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구겐하임 아동병원, 노스웨스턴 소아치과 석사과정과 시카고대학 졸러 기념병원 소아치과에서의 5년 경험으로 연세대 교수가 되면서 1959년에 발족한 `대한소아치과학회`에 참여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참석한 학회 모임은 그 장소가 서울치대 소아치과 의국이었다. 필자 외 모두가 당시 하나뿐인 서울치대에서 수련을 받았다. 1969년 총회에서 초대부터 이어온 차문호교수가 회장, 필자가 부회장이 됐다. 여러 해 선배인 김진태교수를 건너뛴 것은 전공의(황의강)가 필자를 추천할 때 즉시 사양을 하지 않은 무분별함과 건방진 탓이었다. 이후 총회에서 김진태교수가 학회장, 필자는 계속 부회장을 했다. 1975년에 학회장이 되고 학회 행사를 처음으로 학교 건물 밖인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했다. 대학 동기 둘이 경희대(백동준)와 연세대(이종갑) 교수라 얼른 바톤을 넘겼는데 이후 이들이 2년과 4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1982년 호주 멜보른에서 열린 세계소아치과학회 총회에 차문호교수 내외, 김진태교수를 비롯해 조사현선배, 이종갑, 백동준, 이긍호와 참석했다. 귀국 길에 들린 `피지`에서 만난 태풍은 외국 나들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다. 피지 동부 관광을 마친 후 날씨 급변으로 공항행 대신 버스로 엄청난 맞바람을 받는 앞창을 조수가 두 팔로 버티면서 숙소 호텔에 도착, 식당에서 식사 시작하려는 순간 심한 외풍에 천정에서 샨데리아가 떨어지며 바로 정전에 강한 비바람이 들이쳤다. 어둠 속에서 “passport & money only"라 소리치는 직원 안내로 옆 건물로 이동해 태풍이 지나간 새벽까지 버텼다. 침대 아래 발목 넘어 고인 물을 퍼내고 온통 나뭇잎과 가지로 덮인 수영장을 보며 아침엔 콜라로 양치, 식사는 제한된 양만 받으며 공항 파괴로 3일 만에야 피지를 탈출했다.
1984년 차문호, 김진태 교수와 `일본 소아치과학회`에 참석했는데 대회개최를 대학이 차례로 맡아 외부 도움 없이 치르며 학술 발표내용이 다양하며 대학 사이에 거침없이 질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쿄 디즈니랜드 공원 `우주선 열차` 옆자리에서 머리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심히 걱정한 차교수님은 멀쩡하고 난 내려서 어지러워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린 기억이 생생하다. 동경의과치과대학 미우라 병원장 초대 저녁엔 일본말 못하는 필자를 위해 동석한 영어가 훌륭한 젊은 여인은 알고 보니 런던대학엘 유학한 `알바`였다. 샤미센을 뜯던 게이샤와 기념사진도 챙기는 호사를 누렸다.
2002년 총회에서 `보령메디앙스 공로상`을 받았는데 학회장을 지낸 차례대로 차문호, 김진태 두 분 다음이었다. 상패만 받고 상금은 학회 후원금으로 반납하는 관행 대신에 연세대 `양정강 장학금` 기금에 보탰다. 이후 이력서 상벌란의 빈칸 하나를 채울 수 있었다.
학회가 주관한 세계대회로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은 2013년 제24차 세계소아치과학회 서울대회에서 건배사를 한 일은 비록 준비한 말 한 줄을 놓쳤는데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서양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머는 아무래도 웃길 자신이 없어 생략하고 1969년 IADC(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ntistry for Children) 창립을 앞두고 불란서 치과의사로부터 받은 초청 편지에 불참이라 답신한 이야기와 훗날 호주 멜보른 대회에 20명에 가까운 한국대표단이 참석한 이야기를 했다. 1991년 조직 명칭을 IAPD(International Association Pediatric Dentistry)로 바꿨다.
한목소리로 의견 수렴을 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양의사들임에도 2007년 소아과를 `소아청소년과`·로 명칭을 바꿨는데, 10여 년 전 소아치과 명칭을 `소아청소년치과`로 변경을 시도하여 힘겹게 치의학회를 통과 후 마지막 단계인 치협 이사회 안건 심의에서 몇몇 다른 과의 반대로 보류 처분 후 폐기 된 일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학회가 소위 `교수협의회`와는 다르게 발전하기를 원한 시절을 지나, 수련을 마치고 개원에 나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학술행사를 치르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며, 후학들이 세계소아치과학회도 성황리에 개최하고, 이웃 일본이나 최근엔 대만과도 가까이 지내며 한국 위상을 높이고 있어 매우 흐뭇하다.
학회에 이렇다 할 보탬도 없이 세월 따라 최고 연장자가 되어 어른 대접을 받는 이즈음은 많이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