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뉴욕으로 가는 외국 초행길은 1963년 8월, 서울 시내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김포공항행 버스가 출발하는 ‘반도호텔’에서 반 친구와 김동순 학장의 전송을 받으며 시작했다. 여권에는 환전 상한금액인 ‘US $100’ 도장이 찍혀있었고 공항에서는 가족의 배웅은 물론 어머니 출석 교회 담임목사 축도까지 받았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마부일, 홍사일 두 선배와 ‘팬암’기로 동경 1박, 샌프란시스코, 덴버를 거쳐 뉴욕에 도착, 공중전화로 어렵게 확인한 시내 YMCA 호텔에서 첫 밤을 지냈다. 박한영 이정식 선배가 얻어준 병원 근처 아파트 방 하나에 화물선으로 한국을 떠난 김종성 선배와 함께 침대 넷에 식탁 하나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구겐하임 치과병원(The Murry and Leonie Guggenheim Dental Clinic)은 1931년부터 뉴욕 시내 초등학교 학생들을 학교 버스로 정기적으로 불러 무료진료를 시작한 자선기관이다. 1967년에 폐쇄한 이후로는 1954년에 시작한 뉴욕 치과대학 산하 ‘치의학 연구소’를 지원했다. 마이어 구겐하임(Meyer Guggenheim, 1828~1905)은 스위스에서 태어나 1847년 미국으로 이주, 큰 부자가 되어 ‘광산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녀 10명 중 머리 구겐하임(1858~1939)은 가업을 계승해 자선단체와 치과병원을 만들었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솔로몬 R. 구겐하임(1861~1949)이 설립했다.
30여 나라에서 모인 70여 명은 매일 첫 시간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처음 여러 날엔 치아모형에서 아말감 충전 실습을 하기도 했다. 4, 5, 6층에서는 종일 우식 치료만 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 ‘슈퍼바이저’가 “지오이”를 외치면 임시충전으로 끝내기도 했다. 3층에는 미국 체류 경험자만을 배치했다. 정기검진으로 모두에게 ‘바이트 윙’ 2장을 촬영하며, 발치, 치수 치료, 치간 유지장치 등을 시술하여 ‘특진 층’이라 불렀다. 6층 근무를 시작한 후 한 달여 지난 어느 날 부원장이 불러 긴장을 했는데 다음 날부터 3층 근무자와 교체가 됐다. 어찌 보면 승진인데 수십 명 중에서 뽑힌 이유는 진료경험이 거의 없어 그저 열심인 모습을 매우 성실함으로 본 것 같았다. 3층 근무는 종일 ‘바이트 윙’ 촬영을 하기도 하며 다양한 진료를 해 빈 그릇에 많이 담듯이 좋은 경험이었다.
월급 238$ 중 100$로 집세와 자취 식대를 감당했으며, 쌀 상자에 적힌 안내문대로 물 두 배에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는 밥 짓기도 했다. 하루는 시내 이발료가 싸다고 찾았다가 이발 의자를 거울 반대로 돌려놓고 하는 바람에 하도 흉해 보여 바로 다니던 곳을 다시 찾기도 했다. 퇴근하고 세 선배와 종이에 그린 화투장으로 ‘섯다’를 하면 무조건 서는 선배의 돈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주말에 몇 불짜리로 사게된 물건을 종이 화투 만든 선배에게 보여주며 치기(稚氣)를 즐겼다.
뉴욕에 도착한 8월 15일, 마중하기로 한 이와 어긋난 사연은 광복절 축하 한인회 댄스파티 행사였다. 병원 이웃 여성 전용 건물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 초청한다는 내용이 게시판에 붙기도 해서 춤이 능숙한 선배에게 교습을 받으려고 자그마한 전축과 춤곡 도우넛 판 몇 개를 마련했다. 춤 선생 선배는 댄스파티에서 만난 백인 초등학교 교사와 얼마 후 결혼해 미시간 앤아버에 자리를 잡았다. 몇 해가 지난 후 시카고에서 앤아버로 선배를 찾아가서 하루 묵기도 했다.
주말엔 자유의 여신상 포함 보트 관광, ‘라디오 시티 뮤직홀’ 가기와 학생 표로 오페라를 꼭대기 층에서 몇 차례 찾았는데 감상보다 관광 차원이었다. 오페라 팸플릿은 자랑삼아 최상묵 선배에게 보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명절에 미국가정에서 초대하는 행사에 참여한 기억도 새롭다. 이때 함께한 선배와 풀밭에서 나눈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백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어쩌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먼 곳에서 서툰 영어도 해야 한다며 한탄하기에 난 선택을 받아 미국까지 와 봉급 받고 임상 경험도 하니 백인이 부럽지 않다고 하니 바로 위선자라고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세상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며 이제까지 지낸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틈만 나면 임기 후 진로를 위한 지원서를 쓰고 다른 층에 있는 영어가 한 수 위인 인도 동료에게 검토를 받았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