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4.6.20 (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www.chihak.co.kr/news/18694
발행일: 2024/05/01  치학신문
한 세월 지나기 ⑥
시카고대학 WALTER G. ZOLLER MEMORIAL DENTAL CLINIC 근무

 

 

 

 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ZOLLER 기념 치과’는 1936년 Walter G. Zoller가 일반 의학의 발전에 비해 뒤처진 치과 영역에 진료시설과 실험 연구실 마련을 위해 시카고대학교에 3백만 불이 넘는 기부로 시작했다. 한국의 오래전 세브란스 치과와 비슷한 양태에 기초 영역이 더해져 구강외과, 치과 방사선과, 치과 보존과, 악안면 보철과, 교정과에 인류학 연구실이 있었고 원장은 미생물학 전공이며 1919년에 시작한 Journal of Dental Research 편집장인 Frank J. Orland(D.D.S., Ph.D.)였다. 매년 1년 과정 인턴 5명을 교육하고 있었다.
 의사, 치과의사는 5년, 간호사는 2년 기한인 소위 ‘Exchange Visitor Visa’ 신분으로 소아치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재료학 석박사과정 기회를 마다하고 2년 남은 기간엔 임상 경험을 하려고 위 인턴 과정을 지원했다. 이때 시카고대학에 마침 ‘Wylers Children’s Hospital’이 개원하며 S.S. White 치료 의자 넷으로 소아치과 진료를 시작하게 됐다. 하여 순환 인턴 경험 대신 유급조교 직위로 소아치과 진료실에서 인턴들을 지도하게 됐다. 미국은 대학교수 직급이 대개 조교수부터 시작하는데 소아치과 석사라도 미국 치과의사 면허도 없어 시카고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연봉 $6,500인 조교지만 즐겁게 받아드렸다. 다음 해 $7,000이 됐다.
 1966년 6월11일 졸업식을 마치고 7월부터 일하게 된 시카고대학 부속 치과병원까지 출근용으로 미국 생활 3년 만에 1년 된 중고차 Opel Kadett(한국 지엠 르망) 소형차를 마련했다. 운전대를 잡아본 일이 없어 친구가 아파트 앞까지 옮겨주고 일주일 공원에서 연습 후 출근 전날 운전 시험을 치렀다. 시험관과 마주 앉아 ‘쌍안 현미경’ 형태의 시력검사에 좌우 각기 다른 내용임을 모른 채 반만 읽어 외눈박이가 드러나 ‘백미러’ 사용 시 주의하라는 조건부 면허를 받았다.
 2년간 시험이나 논문 걱정 없이 미국 치대 출신 백인, 중국계, 이란계와 브라질, 인도, 필리핀 출신 순환 인턴과 많지 않은 수의 진료를 하면서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전신마취하에 소위 ‘Rampant 우식’ 환아를 과장과 손을 바꾸면서 진료한 몇 사례도 있었고 악안면 외상이나 종양 제거 후에 시행하는 의안, 귀 부분을 포함하는 보철 전문 기공사가 하는 작업을 가까이서 보며 한국에서도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인류학 연구실(Dr. Dalberg)과 일본 의과치과대학 교정학교실은 자매 관계로 매년 방문 교수가 차례로 다녀갔는데 한번은 새로운 브라켓과 접착제 개발로 유명한 ‘미우라’ 교수의 특강을 도운 기억도 떠오른다. 인도 출신 인턴은 1996년 인도 뭄바이 APDC(아태 치과 연맹 총회)에서 우연히 해후(邂逅)했다. 몇 차례 돌아온 세미나 발표는 지금은 혀가 도로 굳었으나 당시엔 그래도 영어가 좀 됐다. 훗날 희소가치 덕으로 치협 국제이사 3차례 국제담당 부회장, 아태연맹 부회장과 재무이사, FDI 유치위원장으로 이어졌다.
 1967년 9월 시카고대학 병원에 마취과 수련 중인 따님을 만나러 서울에서 온 김규택 대선배와 마침 55차 프랑스 파리 FDI 총회 참석 후 세계 일주 중 시카고에 도착한 김귀선, 문영환 세 분 선배를 아파트로 모셔 저녁을 대접했다. 이때 김규택 박사께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 귀국해 교수 취업이 안되면 박사과정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5년 체류 만기 비자를 소지한 의사나 치과의사 대부분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머무는 분위기와 달리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선호하는 아내와 뜻을 같이했다.
 아버님보다 위 연배인 김규택 박사께서 귀국 후 바로 보낸 편지엔 교수임용 가능성과 도움 말씀이 있었다. 1967년에 설립한 경희 치대에 부속병원이 다음 해 개원 예정이며 마침 연세대에 치대 설립(1968년)이 알려져 두 곳을 알아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수 차례 편지로 진행 상황을 전달받았고 드디어 이듬해 지헌택 연세의대 치과 과장께서 1968년 5월 18일 자 항공봉합편지에 교수임용이 결정됐으니 언제든지 귀국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김규택 당신께서는 훗날 경희치대 초대 학장이란 언급이 전혀 없이 연세치대 취업을 알선한 평생 은인이다.
 생후 두어 달 된 딸아이를 처형댁에 맡기고 도중에 엔진 과열로 멎기도 하는 차로 나이아가라폭포를 다녀온 젊은 날을 포함해 참으로 많은 도움과 행운이 함께한 ‘ZOLLER 치과병원’ 근무 2년이었다.

 


관련기사
한 세월 지나기 ⑤  치학신문 (04.12)
한 세월 지나기 ④  치학신문 (03.29)
한 세월 지나기 ③  치학신문 (03.14)
한 세월 지나기 ②  치학신문 (02.28)
한 세월 지나기 ①  치학신문 (02.11)
한 세월 지나기 ⑦  치학신문 (05.16)
한 세월 지나기 ⑧  치학신문 (05.30)
한 세월 지나기 ⑨  치학신문 (06.14)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슈퍼씰
아이스팩

치학신문
2024년 4월
덴탈플라자
 
  l   신문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회사명 : 주식회사 치학신문  |  07225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18길 5
광고접수 : 02-2632-6858(대표)  |  편집국 : 02-2679-9389  |  출판국 : 02-2633-9389, 02-2679-6820  |  팩스 : 02-2671-9389
제호 : 치학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6464  |  등록일 : 1987년 08월 07일
명예회장 : 임채균, 이재윤  |  회장 : 김홍기  |  발행인 : 장백용  |  편집인 : 심영섭
치학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치학신문은 신문윤리강령 및 주간신문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7 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chihak@daum.net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