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협회 임원 하기
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1974년 어느 날 학장실 호출(呼出)로 만난 이는 김동순 치협회장 당선자였는데, 김귀선 학장과 ‘국제이사’ 선임을 의논하려는 방문이었다. 하여 서른셋 나이에 국제이사가 됐다. 1982년 김동순 집행부에서 또 국제이사, 1986년 신민철 집행부에서 세 번째 국제이사를 했다. 1988년 이종수 집행부 부회장으로 당선, 1989년 제14차 아태연맹(Asian Pacific Dental Federation) 서울총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때 신임 지헌택 아태연맹 회장이 15차 뉴질랜드 총회에 부회장으로 나서라며 바로 선거운동(?)을 시도했으며, 1992년 APDC(Asian Pacific Dental Congress) 오클랜드 총회에 부회장을 하겠다고 자비로 참석하여, 후보 5명에 4명 선출 시 선임 부회장들을 제치고 최다득표를 했다. 1994년 부회장 연임, 1996년엔 ‘재무(Treasurer)’가 되면서 FDI(World Dental Federation) 총회 참석에도 항공료 배려를 받았다. 아태연맹에서는 차기 대회 개최국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하여, 이어서 회장이 된다.
1983년 동경 FDI 총회에 한국에서 80여 명이 대거 참석했는데, 국제이사로 맡은 임무가 1986년에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한 제13차 아태회의 김인철 준비위원장의 도중하차로 이학수 신임 준비위원장과 함께 대회를 연기 하는 수습 작업이었다. 이때부터 아태연맹에서 재무이사까지로 이어져 2000년에 ‘List of Honour’ 공훈(功勳)회원 패를 받았다. 이유경, 이영옥에 이어 세 번째다. 공직치과의사회 이사와 감사, 서울치과의사회 이사, 서대문구 치과의사회 고문, 2008년엔·‘2013년 FDI 서울총회’ 유치위원장도 했다.
1975년 6월 미국 위스콘신 치과의사협회 임원 부부 일행이 한국 관광 때 치과대학 방문을 원해 워커힐에 머무는 일행을 서울치대로 안내했다. 다음 날 그들의 저녁 초대에 서영규 고문, 김동순 회장을 워커힐로 모신 것까지는 좋았다. 이때 한국에 도착 후 출발까지 책임진 여행사의 존재를 모른 필자는 사장으로부터 당신 고객을 함부로 가로챘다고 싫은 소리를 들었다. 여행사에 알렸으면 버스 대절 비용도 아끼는데 참 순진하고 어수룩한 국제이사였다. 선물로 받은 위스콘신 치협 총무 ‘H. P. Jacobi’가 지은 ‘A Dentist`s Flight Manual To Success’는 이후 학생 강의(맥도날드 소치 교과서, Practice Management)에도 참고했으며 70년대가 미국 치과계에서 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초창기로 보였다.
국제담당 임원으로 잘한 것이 있냐고 물으면 1989년 4월 14차 아태치과회의(APDC, Asian Pacific Dental Congress) 서울총회를 정동균 교수를 위원장으로 추대, 사무총장으로 자타가 인정한 잘 치른 국제 행사에 나름대로 열심을 쏟은 일이다. 전임 집행부로부터 1차 안내문 발송 및 회의 대행사 선정에 이어, 개최 10여 개월 앞두고 서둘러야 할 상황이라 진료와 대회준비 양립이 너무 힘들어 소위 ‘페이닥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5일간에 걸친 대회에는 5,000여 명의 국내외 치과의사가 참석, 14개국 130여 개 업체에서 240개 부스를 전시, 학술강연에 해외초청 연자로 19명이 참여했다. 개회식에 국무총리 참석, 개 폐회식에 세계 초유(?)·치과의사회 합창단 공연, 환영연에 김덕수 사물놀이패 출연, 맥주와 손잡이 컵은 기념품으로 하는 등 모든 행사 내용은 ‘결과보고서’ 191쪽으로 마무리했다.
아태연맹 ‘재무’ 전임자인 말레이시아 ‘라트나니산 (A Ratnanesan)’은 훗날 ‘윤흥열’ 회장 바로 앞서 FDI 회장을 했다. 업무 인수 후 우람한 체격에 언변이 좋은 이 친구에게 ‘필리핀’ 연회비 입금 기록이 없어 확인 차 물으니 화부터 내, 서툰 영어로 제대로 다투지도 못했는데, 다음날 귀국하는 아침에 눈을 뜨니 호텔 문지방 밑 봉투에 필리핀 연회비와 사과 편지가 있었다. 그로부터 아태회원국 연회비 인상을 시도하다 그만둔 사안을 온갖 저항(일본, 호주, 홍콩, 뉴질랜드)을 무릅쓰고 회비인상을 성사한 일은 창의적인 업무는 몰라도 주어진 일은 미련하게 추진한 결과였다. 아태연맹에서 부회장은 서열로는 회장, 차기 회장 다음이나 소위 ‘Executive council’이라는 회장, 차기 회장, 사무총장과 재무, 때로는 편집장(Editor)은 대회에 참석 시 항공료까지 지원하며, 다른 임원과 부회장은 숙박과 일당 (100$)만 배려를 받았다.
그동안 FDI와 APDF 총회에 모두 40차례 참석했다. 외국 나들이에 나서면 평소에 쓸 일이 없던 영어는 혀가 굳어 어설프다가 돌아 올쯤엔 좀 풀려있었다.
협회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하게 참여했으나 과연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동기생 친구가 구 회장을 맡으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 ‘누군가는 해야 하니, 주변에서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