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지난 2023년 3월 15일 동창회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 치과인 상]을 받았다. 이력서에 [포상 상벌]란을 채울 일이 더는 없을 나이 80이 넘어서다.
수상 소감이 “공로상 심사지침에 ‘사회 공익과 국가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고 훌륭한 업적을 쌓아~’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자랑할만한 훌륭한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남들이 추천해 받은 상이 아니라 스스로 잘한 일이 있다고 소명하며 받은 상이다 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꽤 쑥스럽습니다. ‘공적(功績) 쓰기’는 있는데 ‘부끄러운 일 쓰기’가 없어 자랑할 일 몇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였다.
강채린 서울치전원 학생 기자와 인터뷰에서는 “뜻깊은 상을 받아 큰 영광입니다. 영예로운 상의 취지에 부합하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생을 자랑스러운 동문상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로 약속을 했다.
2023년 1월 31일 자 <건치신문>에 위의 상을 받으려고 이력서 등 서류를 마련하던 중 투고한 <이력서에 포상 상벌 채우기> 제목의 글이 생각나 몇 대목을 옮긴다.
[10년 전 마지막으로 써낸 이력서에 포상기록 네 칸을 ‘보령 메디앙스 공로상’, 연세대학교 총장 표창장(2회), 로타리클럽 3650지구 회장 표창패, 로터리 봉사클럽 위원장 공로상`으로 채웠다.
학력과 경력 등의 다른 내용 들이야 술술 써 내려 가다가도 상벌이나 포상 칸에 이르러선 무슨 상을 받았던가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어 꽤 곤혹스러웠다.
동년배 대학 동문의 자서전에 첫 번째로 올라온 상이 `치과대학 학장상`이라 눈에 번쩍 들어왔다. 아, 필자도 이 상을 받았는데 써먹어 본 일이 없었다. 그이는 학력란에 16개, 경력란에 45개, 저서가 12개나 채워져 있는 등 참으로 부지런히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했음에도 장관 표창장 둘을 더해 받은 상은 단출하다.
학장상을 떠올리다보니 하나 더 생각났다. 개근상이다. 살면서 중고등 6년 결석이 없다. 나이 들어 두 개의 ‘보건대학원 고위자 과정’도 개근했다. 개근 자랑을 틈틈이 할 때면 ‘그런데 학교성적이 그 정도냐?’는 답이 늘 돌아왔다.
한편, 포상하면 떠오르는 선배 어른 한 분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빛낸 상을 비롯해 받은 상이 수십 아니 백을 훨씬 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고희 기념집(紀念集)에 “‘상벌’은 국민훈장, 국민포장, 치협 공로대상, WHO’S WHO(영국발간)에 수록됨”이라고 몇 줄 적은 게 전부다. 큼직한 상이 있으니 나머지는 생략해도 될 듯싶다.
자고로 행복한 삶은 상 많이 받기도 아니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는데 ‘내로남불’이요 ‘흉보다 닮는다’고, 나이 80 넘어 상하나 더 받을 생각을 하다가 그만 이력서의 ‘상벌과 포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주변에 평생을 열심히 지낸 이가 ‘상’을 채우기가 힘들었는지 졸업 때 받은 ‘학장상’을 내세운 이도 있고, 하도 많아 굵직한 훈장 몇만 올린 이도 있다. 이런저런 여러 포상 이력들을 보면 ‘중이 제 머리 못깍는다’는 속담이 맞을 수도 있겠다.
20여 년 전 모교에서 ‘자랑스러운 상’을 시작한 이래 16회 동기는 한 명도 없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뒤늦게 알고 보니 수십 명의 선후배 수상자 중에 바로 한 해 위인 15회에는 수상자가 7명이나 되어 있기에 이를 마음속 명분으로 삼아 상이란 당연히 남이 주는 것이요 스스로 받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잠시 접기로 했다.
하여 10여 년 전에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상을 받으려고 준비한 서류를 활용하기로 했다. 협회 공로상을 스스로 받겠다고 나서지는 않았고, 동기생이 추진하기에 고맙게 받아들였는데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실패했다. 선정위원 아홉이 세 후보를 두고 하는 결정에 매번 기권이 서너 명으로, 세 차례 모두 가(可) 4표를 받아 과반에 1표 모자라 수상자가 없었다. 아쉬웠으나 크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이 들어 크게 내세울 것이 없으면서도 노욕(?)으로 받은 상을 과연 자랑해도 되나? 친구나 가족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상을 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