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1963년 8월 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전, 장충동 소재 [경동교회] 출석 교인인 어머님께서 먼 길을 앞둔 아들에게 교회 등록을 권유했다. 5년 후 귀국 이래 이제까지 집사 직분의 교인이다.
2000년 4월 23일(부활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를 중심으로 사랑을 실천하고자 개원한 ‘선한이웃클리닉’을 약자로 [선이클]이라 했다. 매월 첫째, 셋째 주일 오후에 내과, 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한방의학과, 치과 진료를 비롯해 다과 접대, 옷 나눔, 이 미용 서비스, 인권 상담활동 등을 했다. 치과 진료실엔 치료 의자 3대를 마련했다. 개원 이래 2017년 12월까지 17년 9개월 동안 58개 나라 7만2천여 명을 진료했다. 의료인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수의 봉사자들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15년 근속봉사상 수여자 16명 중에 양의사 2명과 필자가 들어있다.
2005년 [선이클] 3대 소장에 취임하면서 소식지에 올린 인사말을 옮긴다.
‘지난 60년 경동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뿌린 소금의 역할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미약하나마 제가 참여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강형용, 임한종 원로 장로님을 모시고 무의촌 진료를 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의료보험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 무의촌 진료의 의미가 적어져 국내 활동은 중단되었으나 이제는 용정, 베트남, 등 해외에서 진료 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00년 4월 우리 이웃을 향한 새로운 봉사의 하나로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듬어 주기 위해 시작한 진료 봉사가 올해로 5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강원용 원로 목사님을 위시한 교우 여러분께서 재정적인 지원과 자신의 귀한 시간을 할애한 열성적인 참여와 격려로 의료봉사뿐만 아니라 이·미용사분들의 머리 다듬기와 의류 제공 등으로 그 범위 또한 넓히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닌 봉사자분들의 수가 절반을 넘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당시 의사의 신분이면서도 식당에서 심부름도 해 본 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고된 노동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들 또한 고국에선 모두 귀한 아들딸이요 부모이며, 배움 또한 많을 터인데 타국에서 힘들고 궂은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보살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40여 년 주일예배를 빠진 일이 거의 없었으나, 교회 일에는 단지 의료봉사뿐이어서 교인으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중에 [선한이웃크리닉]의 소장직을 맡아 그간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를 원하며 이런 기회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소장을 맡으셨던 김결 집사님, 간사 김선희님, 서명희. 김병태 부소장님, 최종학 총무, 남지현 간사님을 비롯한 봉사자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무쪼록 그동안 선한이웃클리닉에 보여주신 교우 여러분들의 성원을 앞으로도 계속 더해 주시기를 간구(懇求)합니다.’
열여덟 해 동안 짧거나 길게 봉사에 참여한 치과의사, 치위생사, 여러분들 모두 안녕한지? 궁금하다. 기억이 뚜렷한 박대희, 주대원, 문성규, 우상두, 천옥경, 이윤중 여러분의 진료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무료진료 시설로는 괜찮은데 그만두는 것이 몹시 아쉽다던 천사 같은 천옥경님이 생각난다.
2000년 8월부터 심평원 근무로 치과를 그만두었는데 비록 격주 주말이지만 좋은 생각으로 열여덟 해 동안 환자를 대할 수 있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언젠가 드물게 혼자 4시간 넘게 쉬지 못하고 진료했다. 그날 귀가하는 길이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만은 제법 흐뭇했다.
진료비 받던 때와는 다르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