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1983년 어느 날 연세치대 이충국, 손흥규 두 교수가 찾아왔다. 윤중호 학장이 시도하는 행사로 제1회 입학생이 졸업 10년째 되는 다음 해에 11회 졸업예정자와 ‘연아 상봉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만남의 자리를 시작하는데, 기념으로 ‘장학금’ 후원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자리에서 ‘예스’라 했는데, 선뜻 답하는 속마음엔 바로 몇 개월 전에 별세한 부친이 떠올랐다. 입 퇴원을 몇 차례 반복하며 신장 투석까지 이어가는 동안 장남으로 하던 뒷바라지를 계속하는 셈 치자는 생각을 하니 주저할 여지(勵志)가 없었다.
그런데 독일 FDI(1980), 브라질 FDI(1981), 동경 FDI(1983)와 호주 세계 소아치과 대회(1983)에 참석하며 열심히 다니다 보니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하여 신협(서울치과의사)에서 거금(?) 천만 원을 꿨다. 이 기금에 기왕(旣往)에 김찬숙, 김용관 교수가 기부한 장학금을 더해 ‘양정강장학금’이라 했다.
당시 연세의대 김재전 동창회장은 필자를 연세치대 졸업생으로 잘못 알고, 역사가 오랜 의대 졸업생들은 참고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아내와는 의논 없이 한 일인데 장학금 낸 이야기가 경향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을 친구가 알려줬다며 자기가 번 것을 마음대로 한 것이니 잘한 일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이의웅 학장이 1992년에 취임 후 시작한 장학금 전달 오찬 모임에 참석하면서, 기금 이자로 마련하는 금액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2000년, 소아치과 교실 손흥규 교수가 신라호텔에 마련한 필자 회갑연에서 받은 봉투에 새 돈 2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우울증으로 심신이 힘든 가운데 가족들도 함께 받은 호의는 참 고맙고 크게 격려가 됐다. 기금 한 번 낸 일로 전달식에 늘 참석하는 일이 마음에 쓰이기도 하던 터라 8백만 원을 더하여 장학기금에 천만 원을 보탰다. 2002년엔 소아치과학회에서 학회장을 지낸 차문호, 김진태 두 분에 이어 보령메디앙스 공로상으로 5백만 원을 받아, 선례대로 학회에 반납하는 대신 양정강장학금으로 활용했다.
50대 후반 삶이 몹시 힘들 때 따뜻하게 대해준 ‘신우인’ 성경공부 지도 목사님 부탁으로 다문화 가정 사역을 하는 목사님의 따님 대학 등록금과 탈북 여성의 대학원 등록금 후원도 즐겁게 동참했다. 순간적으로 장학금을 내고는 아마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풍문도 있었으나, 비록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은 아니라도 주위에서 원할 때 응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엔 이런 소소한 수준이 아닌 큰돈을 희사(喜捨)하는 것을 보면 초라한 생각이 들어, 왜 평생 소위 재테크에 무관심했는지를 돌아봤다. 평생 배가 고파 보거나, 용돈이 떨어지거나 하는 가난했던 기억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양치과 건물 임대료는 처음 정한 이후 한 번도 올린 일이 없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는 중고차 시장 대신 예외 없이 모두 동료, 후배, 친지들에게 양도했으니 돈에 욕심이 별로 없나 보다.
어른이 되도록 가난을 모르게 키워준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하는 날, 만주 용정 교민회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원하는 학업 대신 일찍이 상업에 투신했다. 만주 용정에서 사업 중 815광복 후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청진으로, 1948년 갑작스러운 탈북으로 38선(한탄강) 넘기, 서울에서 2년여 만에 피난길로 부산을 돌아 서울에 정착하며 향년 65년을 누렸다. 우리 3남매는 ‘부자네’라는 소리는 못 들어도 마음은 부자로 한국에서 제일이라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칠 수 있었으니 이는 오로지 훌륭한 부모님 덕분이다.
근래엔 유대인 성인식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작 알았으면 하는 후회 아닌 후회도 좀 했다. 즉 13세에 치르는 유대인 성인식(바르 미츠바. Bar Mitzvah)에서 친지들이 목돈을 모아 주는데, 돈이란 버는 것이 아니라 불리는 것이라는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진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부호 중엔, 성인식의 영향인가 유대인이 대거(大擧) 차지하여 미국과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이자가 점차 줄고 화폐 가치도 전과 다르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매년 장학금으로 1백만~2백만 원을 보내고 있다. 망구(望九)를 지난 여든셋 나이로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