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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2/11  치학신문
한 세월 지나기 ①
어쩌다 치과대학 입학?

 

 

 

 양 정 강


 사람사랑치과 원장

 

 

 

 

 

 

 대학 입학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A4 한 장 분량으로 24회 정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지난날을 돌아볼 겸, 정리도 할 겸,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작업일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이를 시작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8년 고3 담임선생님과 진학 면담을 했다.
 원하는 의대도 지원 가능하지만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치대에는 더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다는 담임선생의 의견에 어머님이 즉석에서 “좋아요” 답변을 하기 전까지 나는 치과의사가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두가 써낸 장래희망에 ‘의사’라고 한 이후 다른 진로는 생각한 일이 전혀 없었건만 지금의 나는 양의사가 아니라고 치의사로 평생을 보내고 있다.
 당시 나를 치대로 안내해주셨던 3학년 7반 김세영 선생님을 지난해에도 찾아뵈었다. 졸업반 담임 선생님 여덟 분 중 유일하게 건재하시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뵙고 돌아오면서도 그 옛날, 의대보다 치대 입학의 ‘커트라인’이 잠시나마 높을 것을 아셨던 걸까? 생각했다.

 대학 입학을 하고 나서야 나는 치대가 의대 6년제와 달리 4년제 마지막 학년임을 알았다. 이듬해 6년제 입학은 치의예과로, 동시에 자연계 2년 수료 이상 자격으로 20명이 공백을 채웠다.
 입학 후 첫해엔 소공동 본교와 지금 대학로라 부르는 자리에 있던 문리대 교양학부를 오가며 영어, 철학 등 여러 강의를 듣기도 했다.
 기초과목의 해부학(성기준), 생리학(남기용), 약리학(오진섭), 생화학(이진순, 성낙응), 미생물학(박진영), 예방의학(권이혁) 강의는 의대 교수가 했다.
 이때 소공동 교사 주변 환경이 학업 분위기에 덜 어울리기도 하면서 교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느낌을 받기도 했으나 성기준 교수의 한마디는 평생 기억으로 남았다. 바로 옆 한국은행 건물을 가리키면서 “돈에 욕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학교를 다니기보다 ‘은행 금고털이’ 공부를 하라.”고 했다. 이는 훗날 세계보건기구 WHO 사무총장 인터뷰 내용 “돈에 연연해서 의사가 되려면 오히려 장사를 하라”로 이어졌다.
 기억에 뚜렷이 남는 실습은 역시 인체해부학이었다. 기초학 과목에서는 재시험들을 많이 보는데 지방 집으로 떠나며 대리시험을 부탁받아 답안지를 내려는데 다른 친구가 같은 이름으로 내는 것을 보고 황급히 거둬드린 아찔한 기억이 새롭다. 소위 복학생이 여럿이었는데 10년 이상 차이 나는 이가 형이라 부르며 노트를 빌려 가던 생각도 난다.

 3학년이 되고는 419를, 4학년이 되고는 516을 겪었다. 현대사에 심대한 기록을 남기는 시절을 대학에서 보냈다.
 지척에 있는 명동이나 멀지 않은 덕수궁을 찾는 낭만도, 차분한 학업과는 거리가 있는 대학생활이었다. DISK란 음악감상 모임을 이대생들과 함께하기도 하고, 당구를 열심히 치는 친구, 춤바람이 난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 반 친구들을 둘러보니 `UNCLE FELLOW`란 이름으로 복학생과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등산팀 `ALPINE`, 공부팀 `硏友會`, `COSMOS`, `SCA`, `IVY`, `IDEA`, 라는 이름을 한 모임들이 생겨났다. 아무런 모임에도 소속이 없는 친구 일곱 명을 모아 `UNIT`(치과 치료의자)라 하고 글 모음집을 만들었는데, 세월 따라 건재한 친구는 미국 일리노이 치대 소진문 명예교수 한 명뿐이다.
 입학 후 첫 학급대표인 ‘총대’를 뽑는데, 첫 총대는 수석 합격자가 맡는다. 그런데 수석 합격한 친구가 사양해 차석이 맡았다. 내 입학성적은 등외다. 2학기 선거에서 나는 부총대가 되고, 이어 2, 3학년 때 총대를 했다. 100명 정원인 곳에 한 학교에서 15명이나 8명씩 여럿이 합격하기도 한 친구들 사이에서 단 둘이 지원해 둘이 합격한 처지에 대표를 맡았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자존감에 좀 보탬이 된 것 같다.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15명이 합격한 학교 후보가 당선되고, 8명이 합격한 학교 후보가 근소하게 차석을 차지했다. 나는 큰 차이로 꼴찌를 했는데도 즐거웠다.
 등록금 중 일부인 수업료 상위 20% 면제는 줄곧 받았고, 졸업식에서 수석 졸업한 인천 신호용 군과 성적 차이가 큰 차석이지만 학장상까지 받았으니 감사한 치과대학 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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