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에 지방 소도시에 미술관을 건립한 것은 정말 100년 앞을 내다본 선견지명이다. 작품 각각에 오디오 가이드 번호가 매겨져 있다. 필자가 눈여겨본 것만 참고로 옮겨보겠다.
△15. 폴 세잔의 풍경 △19. 폴 고갱의 즐거운 대지 △04. 르누아르 샘 옆의 여인 △11. 끌로드 모네의 수련 △28. 앙리 마티스의 마티스 딸의 초상 △38.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쟌느 에뷔테른의 초상 △25.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등인데 사진 촬영은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고, 가능한 것은 별도로 표시되어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오하라 마고 사부로와 토라지로의 우정은 타계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는데 일본 미술의 컬렉터이기도 했던 마고 사부로는 친한 친구 토라지로의 재능과 진지함을 높이 평가하여 세 번에 걸쳐서 유럽 미술 여행을 하게 하였다. 토라지로는 그림 제작에 힘쓰는 한편, 유럽의 작품을 선별하여 구입하였다. 마티스 딸의 초상화는 그가 마티스 집을 방문하여 삼고초려 끝에 그 유명한 작품이 일본에 오게 된 것이다. 토라지로의 작품에 대한 안목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고지마 토라지로는 1881년 오까야마에서 출생하여 1928년 벽화 제작 시 과로로 쓰러져 심장마비로 이듬해 타계했다. 마고 사부로는 친구를 기리기 위하여 1930년 오하라 미술관을 설립하였다. 그 당시에는 일본인들의 수명도 짧아 미술관 전시 화가 가운데에도 20대 30대에 세상을 떠난 이들도 여럿 있었다. 고지마 토라지로를 기념하여 다카하시市에 나리와미술관이 1950년대 초에 개관되었다. 토라지로는 오하라 마고 사부로의 중매로 일본 아동복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 시이 주지(石井十次)의 장녀 토모꼬(友子)와 결혼했다. 이 시이 주지는 지진, 냉해, 러일전쟁 등으로 한때는 1,200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자수, 잠사 등 실업 교육을 시켰다. 1865년 미야자키현 출생인 그 또한 1914년 4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동상이 미야자키현에 세워져 있다. 거의 100년 전에 오하라 마고 사부로 같은 실업가, 고지마 토라지로 같은 예술가, 이 시이 주지와 같은 사회 사업가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일본이 있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고 사부로는 지금의 구라시키 중앙병원, 구라시키 상업 고교, 오까야마 대학 자원생물화학 연구소 등을 설립하여 오까야마를 과일의 왕국으로 만들어 복숭아 포도 등을 재배하여 지금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안 정 모
안정모치과원장
전치협부의장
속초바우지움조각미술관 설립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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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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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마티스의 마티스 딸의 초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