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창 준
서초이엔이치과원장
갤러리무늬와공간 대표
bonebank@hitel.net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돌 중에는 자연 암벽에 부조(浮彫), 음각, 또는 선각 등으로 불상을 조각한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한국, 중국, 일본에 전하여 졌다고 하며, 돌과 관련된 기원의 장소를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막상 검색을 하다 보니 그 종류는 평소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그 조성시기는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는 물론 최근까지 어우러져 우리 민족의 문화 발전과 연관이 깊어 보였다.
이번에 마애불 중 처음으로 다루는 주제인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홍은동 옥천암 경내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보살상으로 높이 6m 남짓한 석불이다. 1973년 6월 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7호 ‘보도각 백불’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6월 4일 옥천암 마애좌상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2014년 3월 1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20호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이 마애보살좌상에 보이는 삼면 절첩식 보관과 뿔 모양의 관대, 타원형의 보관 장식, 천의식 착의법 등은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보타사 마애좌상과 형식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거의 흡사한 특징을 보여주므로, 같은 사람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추론도 있다.
옥천암은 동해의 낙산 홍련암,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로 이 관음보살상 때문이다. 하얀 칠의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호각인 보도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어서 ‘보도각 백불’로 불리기도 하는 이 관음보살은 ‘해수관음’으로도 불리며 많은 영험담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15세기 후반에 대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 ‘불암’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을 남겨, 이때 이미 마애보살상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용어는 18세기에도 승정원일기, 영조실록 등의 기록에도 등장하고, 19세기 이후에도 동국여도, 조선명승실기 등에 마애보살상과 보도각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옥천암이라는 명칭이 등장했고, 19세기 이후로는 ‘해수관음’, ‘백의관음’ 또는 ‘백불’로 불리어 왔다. 한편 1868년에는 명성황후가 해수관음 곁에 관음전을 지었다는 기록과 함께 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모친인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옥천암에서 기도를 하며 이때 흰 색의 호분 칠을 하여 ‘백불’로 불렸다고 한다.
관음보살상은 홍제천 냇가 산비탈에 면하여 높이 약 6m 정도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그 전면에는 백의관음을 연상하듯 하얀 호분이 발라져 있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를 올려보면 시선이 마치 나를 향하는 느낌이 든다. 초여름 땡볕이 비치는 더운 날 저자가 한참 측면에서 장노출로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중년의 여 신자가 참배를 왔다. 나중에 촬영된 사진을 보니 마애보살의 시선은 절을 하고 있는 참배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기원의 대상과 기도자가 일치하는 듯한 느낌이 와서 한편으로 뭉클한 감동이 생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관음보살상을 향해 절을 마친 그 신자가 일어나 이동하길래 떠나는 줄 알았는데, 그 분은 보살상 옆으로 다가가더니, 한 손을 바위 면에 대고 또 다시 무언가 기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오상의 기적을 받으셨다는 이태리 라베르나 성지의 오상바위의 아랫부분에 거의 같은 자세로 오른 손을 대고 기도하던 어느 자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절실한 믿음과 기도의 모습은 종교의 종류를 초월해서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
http://www.chihak.co.kr/news/16148
관련기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