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창 준
서초이엔이치과원장
갤러리무늬와공간 대표
bonebank@hitel.net
이날도 그는 먼저 앞서 올라갔다. 워낙 전국의 산을 다 돌아다닌 친구라서 체력도 좋고 걸음도 빠르지만, 항상 먼저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곤 한다. 나는 원래 꾸물거리며 이것저것 자세히 보고 다니다 보니, 젊은 시절 가족들과 함께 놀러가면 나는 항상 사진 촬영을 한답시고 뒤쳐지다 보니 가족들 챙기지 않는 나에게 보내는 아내의 말없는 질책의 눈길을 느끼다가 사진을 수십년간 중단한 적도 있었다.
새재 아래 쪽에서 촬영 중인데, 전화가 왔다. “창준아, 여기 기도굴 입구 찾았어. 내가 기다리고 있을께.” 항상 이런 식이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기도굴 입구에 다다랐다. 주 산책로에서 좁게 경사지며 올라가는 소로가 보였다. 잠깐 올라가는 사이에도 나무 숲 사이로 구부러지는 길들이 왠지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 옛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문경새재 길을 걷다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길을 남몰래 올라가던 조상들도 마찬가지 느낌이 아니었을까? 몇 번인가 구부러진 경사길을 오르다 보니 갑자기 큰 바위가 나타났고, 그 바위 아래로 경사길을 오르니 바위 밑으로 작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입구는 낮고 좁았다. 촬영 장비들을 들고 들어가는데, 바닥은 진흙투성이였다. 허리를 굽힌 채 기어 들어가 잠시 어둠에 익숙해지니 바닥에 깔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플래시를 비쳐 보니 십자가와 성모상이 보였다. 사람들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촬영을 시작하였다. 카메라 두 대를 번갈아 조건을 다르게 하며 장노출로 찍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갔다. 시간이 좀 흐른 것 같은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어둠에 익숙한 내 시야에 나이 든 50~60대 부부가 기어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아직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그 분들이 놀랄까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하였다.
“어서 오세요. 그 옛날에 이런 곳에서 기도하고 생활하였다니, 여기 정말 대단한 곳이지요?”
“네 그렇네요.”하고 대답한 남자는 내 오른 쪽 앞의 좁은 깔개에 무릎을 꿇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는데, 나는 잠시 후에야 그가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를 마치고 난 후 뒤로 물러나니 그 분의 아내가 그와 자리를 바꾸어 앞 쪽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순간 나는 ‘띵!’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거지? 그렇다. 기원의 장소를 찍는답시고 와서는 정작 나 자신은 기도도 하지 않은 채 허겁지겁 카메라 장비들 풀고, 사진이나 찍고 있고….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거야? 살아가며 우리는, 특히 나는 가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그 순간 창피하게도 울컥하며 눈물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동굴 안이 어두워서 나잇살이나 먹은 나라는 사람이 눈물을 닦는 모습을 처음 보는 그 분들에게는 안보일 수 있어서 안도가 되기도 했다. 기도굴 안 어두운 공간은 은신처이자 보호처와 같은 곳이었다.
그 분들이 떠나고 한참을 더 지낸 후 바깥으로 나오니 세상은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기다리며 짜증이 났을 터인데 아무 말도 없이 기다려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오늘은 더 이상 아무 촬영도 하지 않은 채 동굴 안 어둠 속에서의 느낌들 속에 머무르고 싶었다.
“김 교수, 이제 점심 먹으러 갑시다. 그리고 나서는 더 이상 촬영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오케이?”
렉시오 디비나, 혹은 기도 중에 말씀 속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느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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