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동 승가사 마애불
임 창 준
서초이엔이치과원장
갤러리무늬와공간 대표
bonebank@hitel.net
신라시대 때 창건된 천년고찰 승가사 맨 위쪽 거대한 직벽에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승가사 백천교 108계단 위에 있는 마애관음석불(보물 제215호)로서, 북한산 꼭대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중생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다. 머리 위에 8각의 돌을 끼워 넣어 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하였고, 거대한 바위 면에 홈을 파서 부처님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목조건물을 설치한 흔적도 있다.
천년 넘게 한양인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인왕산과 남산을 넘어 멀리 관악산과 남한산성의 풍광을 아우른다. 높이 15여m의 거대한 바위에 너비 5.04m에 높이 5.94m의 마애부처님은 풍만한 형체와 잔잔한 미소, 연꽃잎 좌대가 인상적이다(그림1). 입술 부위가 붉은 빛을 내어 그 신기함이 과학적으로도 해석이 어렵다. 또한 좌우측의 바위와 산모양이 마애부처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승가사에 마애부처님이 조성된 시기는 고려초로 학자들은 의견을 내고 있으나 사찰 창건시기인 신라시대(756)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누구나 이곳 마애부처님을 친견하면 불심이 발현되고 고찰 승가사의 위상이 한층 돋보인다 하여 그 옛날 많은 국왕들과 선사들이 기도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자세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기에 가득 찬 모습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마애불을 석가모니라고 하는데, <승가사연기사지>에는 관음보살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어떤 상이든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부처님 임에는 틀림없을 터이다.
현대사의 아픔도 안고 있는 마애부처님은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당시 김신조 등 32명의 무장간첩은 마애불 뒤편 바위 밑에 숨어 있었는데 지상의 군경이 이 일대를 물샐틈 없이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또한 아군이 무장간첩의 총탄에 중상을 입었는데 이곳 스님이 온몸에 피를 묻히면서 구호를 해 생명을 건졌다고 한다. 당시 군 헬리콥터에서 기관총을 쏜 탄흔이 마애불의 얼굴과 가슴부위에 남아 대수술을 했다고도 한다.
108 계단 아래 쪽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세 명의 외국인들이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 갔다(그림2). 코로나19로 인해 인적이 드문 시절인 데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외국 여행객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던 터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소원은 끝이 없고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도 끝없이 이어져 왔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와중에, 산중 사찰인데도 불구하고 이국인들은 이런 시국에 어쩐 일로 이곳에 와서 가파른108 계단을 오르나, 무슨 기원을 하며 올라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높은 직벽 위에 있는 마애불을 올려다 보면 경외심을 생길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모습을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오르다 보면 안 되는 일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 오른 후에 마애불 앞에서 고층빌딩이 성냥곽처럼 보이는 서울의 원경을 내려다 보면 얹혀 있던 답답한 가슴이 좀 뚫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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