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창 준
서초이엔이치과원장
갤러리무늬와공간 대표
bonebank@hitel.net
보물 제93호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경기도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 용암사 경내에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잘 알려진 이 석불입상은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제작하였으며, 그 위에 목, 얼굴, 갓 등을 만들어 얹어 놓았다.
천연암벽의 자연미를 불상 조각에 적절히 활용해 미적 수준을 높인 작품이다. 바위가 자연적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한 마애불에서는 연꽃 줄기를 잡기 위해 들어 올린 팔의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다른 마애불에서는 합장한 팔로 응용하였다. 옷자락의 흐름 역시 바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조각가의 탁월한 선택이 돋보인다. 마치 일부러 조각한 것이 아니라, 원래 바위 속에 있었던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더욱 잘 보이게 하려고 표시를 해놓은 듯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불상(원립불)은 목은 원통형으로 당당한 가슴을 드러냈으며, 몸체는 법의로 감싸고 있는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이 섬세하다. 오른쪽의 사각형 갓을 쓴 불상(방립불)은 합장한 손 모양만 다를 뿐 조각된 수법은 왼쪽의 불상과 비슷하다.
고려 제13대 왕 선종은 평소 자식이 없어 걱정이 많았다. 후궁이 이를 못내 안타까워하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도승 2명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다오”하고는 사라져버렸다. 후궁이 꿈에서 깬 뒤 왕께 아뢰어 왕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더니,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 한산후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설화와 함께 오래 전부터 고려 전기에 만든 석불로 여겼으나, 최근 연구에서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불상이라는 설이 등장하여 건립연대를 두고 두 설이 팽팽히 맞붙은 상황이다.
조선 세조 시기 건립설의 가장 큰 근거자료는 1995년에 발견된 조성문(造成文)이다. 기존에는 판독할 수 없었던 몸체의 조성명문 2백여 자를 최근에 판독한 결과 용미리 석불이 세조의 왕생정토를 기념한다는 내용과 시주한 사람들의 내역이 기록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용미리불상을 조선 세조와 그의 부인인 정희왕후를 미륵불 형상으로 묘사한 부부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 불상이 정말로 세조 대에 만들어졌다면, 왜 고려 선종의 한산후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붙었을까? 이에 대해서 동국대 이한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4대 헌종의 아우인 한산후는 헌종에게 양위를 받아 등극하는 15대 숙종(삼촌)에게 모반을 꾀했다는 죄명으로 죽임을 당했다. 즉 원래 세조와 정희왕후의 모습을 본 따 불상을 만들었는데,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그 불상에 350년 시차를 두고 왕위찬탈을 위해 두 왕조에서 벌어진 삼촌에 의한 조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함께 대입시키면서 세조의 불상에 고려 한산후에 대한 민담들이 함께 붙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민담들이 설화로 둔갑되고 불상 또한 고려 선종이 만든 불상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상의 모습이 고려시대의 양식을 잇는다는 점, 그리고 최근까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간주된 점 등을 근거로 여전히 고려 전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아직은 공식 정설상으로 여전히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사료와 증거들이 없는 상태에서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기는 정말로 힘든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세월이 흐르면서 혹은 정사로, 혹은 설화로 서로 상충되면서 역사는 흘러갈 터인데, 후학들은 정확한 사료나 유적을 바탕으로 정사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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