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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1/16  김영수
나의 삶 그 발자취를 따라 <23>
학생 담당 학장보 시절 2

불리한 여건의 학생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내 역할로 정해

 

 

 김 영 수


 서울대 명예교수

 

 

 단 가정방문과 거주처방문, 가족 상황을 통해 확인한 것은 가정이 판잣집에 사는 수준의 가난, 숨기고 싶은 부모에 관련된 가정사, 학업성적 등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위를 캐물으려는 나의 숨겨진 본능적인 심리가 내재되었음을 알게됐다. 내가 1학년때 교양학부에 다닐 때 체육과목에서 철봉에 턱걸이하는 것으로 시험을 대신 한 일이 있다. 나는 부친이 중국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수송하다 마적에게 희생되어 유복자로 태어나 조부모님의 보호로 살아가고 있어 여별의 옷을 사달라는 말을 할 처지가 안되 서울대 엠블럼 ‘샤’가 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감사하며 대학을 다녀 교복으로 어려움을 감추고 살았다.
 학우들이 보는데 구멍 뚫린 내복이 드러날까 나는 조용히 대열에서 벗어나 운동장을 떠나 시험을 포기 했었다. 그래서 체육학점은 유일한 ‘D’ 학점을 받았고 평생 그 이야기는 마음속에 묻어 두고 살아왔다. 그래서 불리한 여건의 학생 심리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내 역할로 정했다. 그래서 내가 선도대상 학생을 면담할 때에는 “네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일이라면 그땐 뭐든지 해라! 그땐 내가 앞장서겠다”라고 했다.
 당시는 많은 통제가 이루어진 상태여서 사실을 알 수도 없는 시기였다. 40년 넘게 지나간 시절 내가 알수 없었던 사건 속에서 일부 내용을 아는 사람들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던 동아일보 신문기자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전 그를 만났을 때 당시 동아일보에 영가의 운율이 흐르는 메리언 앤더슨의 노래 “오, 하늘이여!”라고 통곡하는 수필을 써서 동아일보에 게재했었는데, 당시 군부가 그 글의 의도를 간과해 언론 심의를 통과해 신문에 실렸음을 알려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학생처장을 하던 이OO씨는 서울대학교 학생학장보 회의를 곧잘 주관했고 학장보들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겸손함을 보였다. 총장이 되기 위해 권총장과 정부에 지극한 아첨을 했고 그걸 잘해 후에 총장을 거처 총리에까지 올라갔다. 관악 교수들 가운데 청와대에서 전화 오기만 기다리는 polifessor가 많다는 느낌이 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가 청렴한 듯, 학자인 듯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반정부 학생들을 콘트롤 잘하는 공을 내세워 다음 총장이 되기위해 권OO 총장과 정부에 지나친 아첨을 했다. 그래서 총장을 이어받고 문교부장관까지 할것으로 기대했는데 또 한번 인사가 잘못돼 총리까지오르고 퇴임후에는 정신문화 연구원장도 역임한 겸손으로 위장한 오만하고 거짓스런 인간임이 들어 났다.
 그가 총장을 했을때 나는 교무학장보 임기가 만료되 공로패를 받으러 총장실에 갔었는데 옆에 서 있던 고OO 부총장이 “김교수는 학생학장보도 했는데...”하면서 패에 학생학장보란 글자가 없다고 지적했다. 옆에있던 교무과장에게 수정해야 되겠다고 하니까 이OO 총장은 “그냥 줘 버려”해 그의 매너와 인간성에 의심이 갔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신문에서는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서대문구 작은집에 사는 가난한 경제학자라고 좋게 평가 했지만 출입 기자들에게 얼마나 아첨했으며 그런 기사가 났을까 생각하게 한다. 나중에 서울대 이OO 총장은 기자들에게 잘못 보여 온갖 시비에 휘말려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한 부총리에서 낙마한것과 대조 된다. 이OO씨가 어느날 외국에가다 김포공항에서 마중나온 부인을 택시타고 가라고 하고 혼자 관용차를 타고 갔다고 한다. 민간인은 관용차를 타면 안된다는 규칙을 지키는 공무원임을 과시하는 쇼가 아니었는지.
 나보다 앞서 학생학장보를 한 김OO교수는 다음엔 자기가 교무를 맡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어긋나자 김OO 학장을 친척인 본부 교무과장을 통해 이OO 총장에게 매일 모함하고 다음 교무학장보를 하기 위해 김OO씨를 밀어주어 드디어 그 공으로 김OO 학장밑에서 교무학장 보직을 했다. 당시 학장은 총장이 임명하였다. 김OO은 김OO을 감싸 주었으나 학식 및 직무능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속에 교수채용 비리까지 겹처 2년뒤에 파면 선고를 받았다.


 

<본 글의 내용은 치학신문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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