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emark 교수 책을 접하고 임플란트 심취 연구에 몰두
김 영 수
서울대 명예교수
1982년 뉴욕 Linkow의 clinic을 방문해서 견학을하고 Boston 하버드의 harvard implant-transplant research unit and special care 과를 방문하여 implant의 현장을 보 고 용기를 내어 재료는 대학 선배의 여러 가지 기구 재료 도움을받아 이때부터 일반 총의치 보철과목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사라져 갔다.
1984년에 외국서적 판매원이 이상한 책 한권을 가지고 왔다.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데 내게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왔다며 Quintessence가 출판한 Per-ingvar Branemark 교수가 저술한 책Tissue-Integrated Prostheses, Osseointegration in Clinical Dentistry였다. 책장사꾼들은 교수들의 전공과 관심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바로 이것이다’ 맘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그 책을 거침없이 거두어 들였다.
5년 성공율 75%를 가진 linkow의 data에 비해 15년 95%의 성공률을 나타내는 전혀 새로운 것이다. 1985년에 1년간 하버드대와 Sweden의 본고장을 방문하면서 나는 새로운 희열과 학문적인 기쁨을 느끼면서 총의치학 분야보다는 implant 강의와 실험적 연구에 몰두 하게 되었다. 이것이라면 내 교수생활의 모든 것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1974년 미국유학후 교합학을 도입해왔을 때 김규식 부속병원장은 나를 도와주지 않아 10년 허송세월을 보낸 경험으로 보아 다시는 이런 일을 병원이나 학장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굳히고 역사속 문익점처럼, 내가 스스로 알아서 서울대학교병원에는 내가 직접 도입해 임상 실험을 해 왔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 특히 보수적인 일본학계에 뒤지지 않고, 국내 개원가에 뒤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재료는 대학 선배로부터 제공받고 그래서 하버드에서 배운 임상 연구이외에는 많은 연구는 못했지만 휴일에도 밤에도 가장 많은 진료를 하려고 총의치학 책 저술은 다른 분에게 미루고 말았다.
강열한 흥미를 자아내는 데 마음이 끌려 Branemark 교수에게 종교적인 신앙심 같은 것이 생겨 의심치 않고 미국의 한 교수는 승인을 받고 책 한권을 집필 하려고 1년 동안 집에서 쉬었다고 한다. 책은 나중에도 쓸 수 있다. 허준이 그랬고 임진왜란 때 유성용도 징비록을 낙향해서 썼다. 나는 아직 책을 쓸 만한 학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이론을 일단 지도교수의 책 ‘무치악 환자 치료학’을 번역해 출판하기로 했던 것을 장경수 교수의 도움으로 출판 했다.
일본에서도 그 책의 번역본이 출판 된 것을 보았다.
예전에 외국어 책을 교과서로 쓰는 것은 학생들이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 원서로 공부하면 외국 가서 공부하기 쉽고 학회등에서 발표하는데, 대화하는데 도움이되지만 일본 학생들은 편안히 번역본으로 편하게 빨리공부하지만 외국에가서는 영어 표현에 좀 답답한 경우가 많아 보였다. 원서 자체가 영어 교본인 셈이다.
당시 한국에서 교과서를 출판 하는데에있어 500권이 판매 되지 않으면 출판을 안 해줬다. 자비출판 밖엔 답이 없었다. 당시 한국학생들은 그만한 영어는 다 이해한다고 보였으나 글을 해석해도 그 의미를 알수 없는 경우가 있어 모는 것은 유학이 답이라고 보아 내가 유학을 택한 이유의 하나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