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Pac 체제와 목표 유지한채 같은 회칙따르며 AAP로 개명
김 영 수
서울대 명예교수
ICPac의 시작
Shaerer교수가 세계를 4등분하여 ICP를 좀더 국제화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그림. 참조) 그중 하나가 아시아 지부였다. 일본의 아이치 가꾸인 대학의 겐지 히라누마를 대부로하고 제1회는 가고시마(94.11.3-4), 제2회는 Yokoska(96.9.21-22)에서 개최되었고 거기에서 내가 차기회장에 선출되었고 이때 초대회장 히라누마가 연구활동을 독려하기위해 구연 1명, 포스터 1명에게 각 500$ 상금을 10년간 지급하기로 하면서 마츠오 ICPac회장이 기증한 Banner를 인수했다. 이사회는 매년 실시하고 격년으로 학회를 실시키로 했다. 이곳에는 이영옥, 김인철교수 등이 참석했고 내가 결국 3대 회장이 된 것이다.
1998년 나는 다음 임원회와 학회 준비차 동경에 가 전임원들을 각각 만나보고 상의를 했다. ICP전임 공동회장을 한 마루야마교수와 히로시마 1회 대회를 준비했던 아까가와교수와 일본대학 요시노리 고바야시 교수를 각각 동경 제국호텔에서 만나 회담을 했다. 이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다. 아까가와는 본회가 ICPac 결성을 취하 했다는 것이고 나는 본부에서 통보받은바 없고 아까가와에게서만 들었다. 이사회에서 뭐라했는지 공중에 뜬 단체로선 특별한 생각이 없다. 결국 확정되지 않은 일에 일본인들이 사생아를 생산한 것이다. 일본인 교수들이 깊이 관여한 이것은 그들 간에도 이견이 많고 동경 오사카 지역간 문제, 일본 보철학회내 헤게모니문제가 얽혀 있는 것 같았다.
제 6회 ICPac 이사회는 7월 15일 개최키로하고 거기서 모든 것을 결정키로 했다.
예정 대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회의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였다. 그간 수회 이사회를 홍콩, 대만 등 각나라 주요 치대 교수회의실에서 진행해와서 관례대로 서울 ICPac 이사회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수회의실에서 개최 했었는데 결론은 본부의 4개 분할 지역 지부 설정 취하를 받아들이고 이지역에는 국제 보철 단체가 없으므로 ICPac는 현 체제와 목표와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명칭은 AAP (Asian Academy of Prosthodontics)로 개명하고 기본회칙은 따르기로 결정했다.
1979년 WHO 모임에 말련에 참석한 경험과 1년전 말레이시아 치과의사 외부시험관으로 초청되어간 일이있어 제1회 이사회는 지리적으로 낮익고 아시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참가하기 쉽도록 Kualalumpur의 말라야 치과대학 교수회의실에서 하기로 하고 그 대학 보철과 Ling Booi Ci 교수가 맡아 준비했다. 이대학의 부총장은 구강병리학 교수여서 저녁에 pool장 옆에서 파티를 열어 주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행사를 도운 Ling 교수는 말련 대학교수 정년이 55세여서 일찍 퇴임하고 타대학에서 일하다 암으로 사망해서 빛을 갚을 수도 없었다. 논문 한편 공지가 보철학회지에남아 있을 뿐이다. 대신 그후임 교수 3분을 한국에 초청한 일이 있다.
이회의에서 느낀점은 동남아시아 주요 활동인들은 대부분 중국종족 이라는 점이다. 말련어를 쓰는 말레이시아는 좀 덜하지만, 싱가폴, 홍콩, 대만 등 사실상 같은 종족이고, 영연방과같은 연방의식이 심하고 자주 연락하고, 수다 스럽고, 예의가 부족하고 억지스럽다. 그리고 알아듣기 어려운 중국어 억양을 닮은 영어를 하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므로 앞으로 학회운영자들은 이들과 나를 다스릴 지혜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