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노역은 면했고 8월엔 유엔군이 엄청난 포탄 퍼부어
김 영 수
서울대명예교수
6.25후 서울의 인공시절
집집마다 인원을 차출하라는 지시가 가끔 내려왔었다. 당시에 남자라곤 나이 많은 조부님이 계시고 우리 집에서 한명이라며 나밖에는 적절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우리집의 대표로 나갔다. 내가 모이라는 곳으로 갔더니 나는 나이가 어려 필요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민간인에 근로 역
나중에 다녀온 사람에게 가서 무엇을 했냐고 물었더니 남산 고사포 기지에 포탄을 지고 올렸다고 했다. 당시 남산에는 북한으로 날아가는 미군기를 공격하기 위한 인민군 고사포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무거운 포탄 운반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기가 지나갈때마다 수없이 많은 고사포탄이 터져 자국이 버섯같은 하얀 모양이 생겨났다. 그러나 한 대도 맞지 않고 유유히 날아갔다.
의용군 차출
어느 날에는 서울운동장 건너편에 있던 덕수상고 운동장에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역시 아이들은 가라고 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궐기대회 이후에 남자들은 그대로 남으라고 하고 이들을 모두 의용군으로 잡아갔다. 약수동 동회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갓 결혼하고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장사하고 있었는데 궐기대회를 한다고 나오라고 해서 갔는데 얼마후에 평양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편지가 왔다는 것이다. 상부에서 시킨 문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있는 딸과 지금은 슬프게 살고 있을 것이다.
신당동 네거리의 오른쪽 코너에 파출소가 있던 자리에 인공시절 보안서가 생겼는데 젊은 남자만 지나가면 끌어들여 조사하고는 의용군으로 잡아갔다고도 들었다.
미군기의 한강교 폭격 목격
어느날, 해방촌 부근에 사는 친척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약수동에서 한남동을 거쳐 걸어가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공습경보가 울리더니 미군기가 날아와 한강교를 폭격하는 영화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첫 번째로 투하한 것은 맞지 않고 두 번째는 보기에 사이다병만 한 검은 물체가 좌우로 흔들흔들 하면서 떨어지더니 다리에 맞았다. 그때 엄청남 섬광후 많은 검은 연기가 떠 올랐다. 그때의 폭탄의 위력은 천지를 진동하는 것이었다. 폭탄은 자체의 파괴력을 능가하는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전쟁은 결국 소총으로 한다기보다는 폭탄이나 대포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포병으로 복무하고 제대한 김병호란 친구가 포병의 우위를 자랑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도 결국 대포의 위력으로 일본의 조총을 이긴 것이 아닌가 생간된다.
드디어 8월쯤 되자 유엔군은 용산 인민군 폭약 창고를 폭격해 이날은 온종일 서울을 뒤덮는 연기와 계속되는 폭약이 터지는 폭발음이 천지를 진동하는 소음이 계속됐다. 8월말에 이르러서는 서울에 처음으로 제트기가 출현했다. 초음속이어서 비행기가 지나간 다음에 소리가 들리고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머리를 들어 비행기가 날아간 하늘을 쳐다보면 비행기가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려 저항불능의 무기가 되었다. 그래서 제트기들은 저공비행을 서슴치 않았다. 유엔군의 비행기가 뜨면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야간에는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검은색 헝겊으로 만든 포를 덮어야 하는데 신일교회 손장로라고 하는분은 불및이 새어나가 기총소사를 받아 민간인으로 사망했다. 유엔군기 조종사가 북한군사 시설로 오인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우리집과는 1km 거리였다. 밤에는 마치 우리 집위를 기총소사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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