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정지 상태였던 김수희의 복귀 곡 호남지역 떠올라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노래는 생각을 머금고 말(言)의 끝자락을 물고 있다. 입은 노랫말을 흥얼거리는데, 머리에는 특정 지역이 떠오른다. 이 노래는 호남 지방으로 가는 기찻길을 생각의 고리에 달고 있다. 부산 출생 김수희가 부른 이 곡은 손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의 아들이거나 손주 같은 노래로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남행열차의 종착역은 목포다. 목포역은 그리움의 역이고, 상봉의 역이고, 사랑을 남겨두고 떠나가는 이별의 역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빡깜빡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비 내리는 호남선 마지막 열차/ 기적 소리 슬피 우는데/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빡깜빡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 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가사 전문)
우리나라 철도는 경인선·경부선·호남선 순으로 부설됐다. 경인선은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철로 32.2km로서 1899년 9월 8일 개통됐으며, 1825년 9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기적을 울린 후 74년 만이었다. 경부선은 1901년에 영등포와 부산에서 동시에 기공식을 하고, 1904년 11월 10일 445.6km를 개통했다. 이는 1989년 조선으로부터 철도부설권을 받아낸 일본이 조선인 인부를 강제 동원하고 침목 등 목재를 남벌해 사용하는 등 약탈적인 방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부설한 것이다. 이어서 1906년에는 경의선과 연결해 신의주까지 직통했으며, 1911년에는 한~만주 간의 직통을 운행하고, 1913년에는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과의 화물 운송을 했다. 1933년에는 부산에서 심양까지 급행열차 히카리를 운행했으며, 1939년에는 부산~북경 간 국제급행 고아·아이쿠리를 운행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또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음흉한 야욕의 증거물이다.
호남선은 1914년 1월 11일 대전~목포를 연결하는 선이 완전 개통됐다. 이 공사는 1896년 프랑스가 경성~목포를 잇는 경목선 공사권을 요구했으나, 대한제국은 경목철도회사를 설립해 추진하다가 자금 사정으로 1904년 민간회사로 넘기면서 호남철도로 이름을 바꾼다. 여기의 호(湖) 자는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에서 따온 것이며, 일본은 이의 부설권마저도 당시 돈 12만 9천 원에 강탈해 갔다.
당시 29세의 김수희(본명 김희수)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이려운 생활을 했으며, 숙명여고를 졸업한 후 미8군 무대에서 블랙캣츠라는 여성 그룹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1976년 <너무합니다>가 히트를 하면서 본격적인 대중가수 반열에 합류했다. 이어서 1982년 <멍에>, 1984년 <잃어버린 정> 등이 연달아 히트 하면서 인기를 누렸으나, 1984년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이 정지됐다. 이후 1986년 <남행열차>로 가요계에 복귀하면서 제2의 전환점을 만든다. 그녀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여자 조용필’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남행열차>라는 제목의 노래는 1939년 조명암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끊임 없이 흔들리는 남행열차, 추억만 괴롭습니다’라는 이난영 노래가 원조이고, 1957년 한금석이 작사하고 하기송이 작곡한 ‘한도 많은 기적 소리 울리면서 떠나는 남행열차’라는 손인호의 노래가 그 후속 노래다.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전두환 정권 당시 3S(Sports Sex Screen) 정책으로 프로야구가 성행한 때 야구장 팬들이 열광하며 떼창을 한다. 광주 무등경기장에는 <남행열차>, 부산 사직구장에는 <부산갈매기>, 인천 문학구장에는 <연안부두>가 절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