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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8/14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㉘
1968년 소양강처녀 : 반야월/이호/김태희·하유비(미스트롯)

부르기 쉬운 노래방 인기 1위곡 춘천 노래의 대명사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소양강처녀>는 지금도 살아 있는 춘천 강 뱃사공 딸의 실제 이야기다. 소양강 처녀는 사공이 아니라 인디 가수(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가수)였다. 이 노래는 1968년 가수 지망생, 춘천 출신 18세 윤기순을 모델로 쓴 생생한 사연이다. 윤기순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한쪽 다리를 다친 민물 어부(강 어부)였다. 소양강에서 빙어·붕어·잉어를 잡아서 팔던 어부였다. 이러한 아버지를 돈을 벌어서 돕기 위해 기순은 경춘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가 찾아간 곳은 서울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 그곳에서 그녀는 심부름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고, 전화도 받고······. 그러면서 노래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순의 아버지는 딸을 도와주는 작가분들께 소양강 매운탕이라도 대접하려고 초대를 한다. 이때 초대된 작가들이 반야월·김종환·월견초·고명기 등등이란다. 이들이 소양강 상중도(上中島)에서 천렵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갑자기 안개가 일고 소나기가 퍼붓는다. 돛단배는 흔들리고 윤기순은 반야월 앞에 엎어진다. 반야월은 이 광경을 생각하며 돌아온 즉시 가사를 쓴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너 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 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찌나/ 아~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가사 전문)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당시 18세 김태희(본명 김영옥)다. 1951년생 김태희는 작곡가 박시춘의 먼 조카다. 그녀는 1970년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소양강처녀>를 취입했다. 옴니버스LP 스타일의 12곡 중 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발매한 음반은 10만 장이 팔렸단다. 그해 가요 신인상을 받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김태희의 아버지는 반야월에게 양복 한 벌을 선물을 했다고 한다. 고전적이고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후일 담이다.
 소양강(昭陽江)은 춘천 북산면을 지나는 하천이다. 인제군 서화면 무산(巫山)에서 발원해 양구·춘천 우두평야 동북쪽으로 흘러 북한강과 합류한다. 설악산·오대산 내린천이 인제 합강정에서 만나 소양강을 이룬다. 길이 166.2km, 1973년에 춘천시 신북면의 북한강 합류 12km 지점에 다목적 소양강댐이 완성됐다. 소양강댐은 사력(砂礫)댐 으로는 동양 최대이며, 세계 제4위다. 댐은 호수 면적 960만㎡, 총 저수량 29억 톤으로 소양강의 물길을 가로막아 만들어졌는데, 홍수 조절 능력 5억 톤, 농공업 용수 공급 능력 12억 톤, 시설 용량 20만㎢의 수력발전소를 가동하는 등 다목적으로 이용된다. 이로 인해서 생긴 호수가 소양호(昭陽湖)이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물안개로 인해 춘천이 호반의 도시로 불린다. <소양강처녀>는 이 댐이 생기기 5년 전에 탄생한 춘천의 대명사 노래다.
 이 노래는 이후 한서경 등이 리메이크하는데, 실제 대중의 인기를 받은 것은 노래방이 뜨면서부터다. 우리나라의 노래방은 1991년 4월 부산 동아대 앞 로얄 전자오락실의 100원짜리 동전 3개를 넣고 노래 1곡을 부르는 코인노래방이 시초이며, 그해 여름 사업자 등록을 한 광안리해수욕장 <하와이안비치 노래방>이 우리나라 노래방의 첫 단추다. 그 후 마산·창원·대구를 거쳐 그해 말 서울로 진입하며, 전국에 1만 2천여개가 오픈된다. 이때 가장 뜬 노래가 바로 <소양강처녀>다. 노래방 인기 1위 곡이 된 이유는 부르기 쉽고, 박자 맞추기 쉽고, 가사 외우기 쉬웠기 때문이다. 김태희는 이때 까지 20년 넘게 평범한 아줌마로 지내다가 다시 '김태희 회상 앨범'으로 제2의 가수 인생을 시작한다. <소양강처녀>가 소양강 아줌마가 돼돌아온 것이다.
 이 노래 가사 중에서 '슬피 우는 두견새야' '동백꽃 피고 지는'이란 구절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산새인 두견새가 물가에 있을 리 없다는 얘기, 남녘 바닷가에 피는 동백꽃이 칼바람 부는 소양강 변에서 필 수 없다는 시비였다. 절반의 합리다. 동백꽃은 위도 상으로 충남 서천 이남에서 서식한다고 하지만 아열대성 기후로 북쪽으로 전이돼가는 요즈음은 다르리라. 하지만 이 노래 속의 동백은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꽃를 말한다. 산동백이라고 하는 꽃나무, 춘천 출신 작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생강나무꽃을 말한 것이다.
 2006년 6월, 노래의 주인공 윤기순이 춘천으로 돌아와 풍전가든을 열었다. 18세에 집을 나섰다가 55세에 귀환했다. 열여덟 딸기 같던 어린 순정을 가슴에 안고 타관 객지를 떠돈 지 36년 만이다. 그녀는 노랫말처럼 슬피 우는 두견새가 돼 전국의 밤무대를 휘누비는 한 많은 타향살이를 끝내고,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 평상 20개를 폈다. 이곳에서 민박도 치고 닭백숙도 판다.
 2004년 10월 8일, 춘천시는 근화동 소양2교 인근에 <소양강처녀> 노래비를 제26회 소양강문화제에 맞춰 제막했다. 2.5톤 자연석에 노랫말을 3절까지 새겼으며,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음향 시설과 조명 장치가 설치돼 있다. 이때 작사가 반야월이 청빙(請聘)돼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야기했다. 반야월은 70여 년간 5천 곡의 노래를 만들 었다. 그는 반야월이란 이름 외에 추미림·고향초·옥단춘·박남포·금동선 등의 이름으로 노랫말을 지었는데, 본 이름은 박창오다. 1917~2012년, 마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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