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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8/15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㊽
1983년 결혼기념일의 노래 : 박승인/송창식/홍민

가정에 대한 홍민의 바람과 이혼 만연한 세태 상반 될 듯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결혼기념일의 노래>는 해로동혈(偕老同穴)을 기원하는 부부 노래다. 남편과 아내가 화목하게 살아서 함께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뜻.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IMF 시기에도 하루 평균 1,500쌍이 결혼하고 339쌍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은 결혼에 이혼, 미혼에 비혼(非婚)의 통념이 확산되고 있다니 착잡한 심정이다. 결혼에 비해 30%가 넘는 숫자가 이혼을 했음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욱 따뜻하게 들리는 듯하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내 가슴은 뛰었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그건 사랑이었오/ 당신이 내게 다가올 때 나는 알고 있었오/ 소리 없이 내게 찾아온 그건 행복이었오/ 아 봇물 같은 사랑/ 이 가슴 깊은 거기에서 하늘까지 터진 사랑/ 백년을 두고 태워도 끝이 없을 우리 사랑//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내 가슴은 뛰었오/ 호수처럼 멀리 일렁이는 그건 사랑이었오/ 당신의 미소 한 조각에 세상은 빛났오/ 가슴속에 가득 채워진 그건 행복이었오/ 아 밀물 같은 사랑/ 비바람 몹시 불어와도 바다처럼 깊은 사랑/ 백년을 두고 태워도 끝이 없을 우리 사랑/  끝이 없을 우리 사랑 끝이 없을 우리 사랑. (가사 전문)


 살아가면서 ‘사람이 많이 그리운 가수’ 홍민은 <결혼기념일의 노래>로 세상을 향해 해로동혈을 권했다. 지난 2012년 12월 23일 필자는 고향의 관광호텔을 전세 내어, 부모님의 회혼식(결혼 61주년 기념식)을 치루어 드리는 복을 누렸다. 필자는 그날 이 노래를 가슴속으로 몇 번을 음유했었다. 1952년 12월 14일 사랑하는 부모님은 결혼을 하는 날 첫 대면을 한 후, 2020년 기준으로 68년째 해로하고 계신다. 아버님은 90세, 어머님은 85세이시다.
 홍민은 <결혼기념일의 노래>를 36세에 처음 불렀다. 그는 1947년생이니까 1983년이 36세다. 1973년 <고별>로 데뷔했다. 이후 <고향초> <석별> <결혼기념일의 노래> 등 많은 히트 곡을 낸 홍민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담담하게 채워준다. 도톰한 저음의 매력이 정갈하게 가다듬어진 발음으로 더욱 진한 그리움에 젖게 한다. 이러 한 홍민의 음악적 감성은 그의 가족사와 맥을 같이한다. 홍민의 아버지 홍희유는 그가 4세 때인 1951년, 가족들을 남겨두고 홀로 북으로 떠났단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였던 홍희유는 소설가 이문열의 아버지인 이원철 등과 함께 북으로 갔단다. 홍민이 4세, 누이가 6세, 남동생은 겨우 2세였다. 홍민의 아버지 는 일본 유학 시절에 사회주의를 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홍민을 말할 때는 늘‘사람이 많이 그리운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홍민은 2008년 3월 제천시 청풍면 소재지에 ‘홍민의 집’ 카페를 열고 기타를 치면서 7080노래를 라이브로 들려준다. 물론 <결혼기념일의 노래>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 그는 젊은 날에는 노래를 잘 부르려고 용을 썼지만, 지금은 목청에 나오는 대로 부르는 게 감흥을 더한단다.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아담한 호반마을 한 켠에 자리한 조그만 공간, 일렁거리는 장작불이 고희를 넘긴 홍민의 얼굴에 깊은 서정을 더해준다.
 결혼 연차별로 기념일 별칭도 다양하다. 1주년 지혼식, 2주년 고혼식, 3주년 초혼식, 4주년 서적혼식, 5주년 목혼식, 6주년 당과혼식, 7주년 화혼식, 8주년 전기기구혼식, 9주년 도기혼식, 10주년 주석혼식이다. 이어서 11주년 강철혼식, 12주년 마혼식, 13주년 수혼식, 14주년 상아혼식, 15주년 수정혼식, 20주년 도자기혼식, 25주년 은혼식, 30주년 진주혼식, 35주년 산호혼식, 40주년 녹옥혼식, 45주년 홍옥혼식, 50주년 금혼식, 55주년 비취혼식, 60주년 회혼식(금강혼식), 75주년 금강석혼식(미국 다이아 몬드혼식)이라고 한다.
 <결혼기념일의 노래>는 1983년 박승인이 노랫말을 짓고, 송창식이 곡을 곁들여 노래를 부른 홍민의 가슴속에는 단란하고 지속하는 가정에 대한 바람이 가득하리라. 그 누가 여기에서 예외일 수가 있으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이혼율은 인구 1천 명당 2.1명, 2017년은 2.7명이란다. 결혼은 남녀가 합쳐 대를 이어가는 예다. 예로부터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치르고, 여자는 15세에 계례(笄禮)를 치뤘다. 남자가 상투를 매고 갓(冠)을 쓰고, 여성이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는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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