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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11/15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⑪
1969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 : 손석 / 유용현 / 나훈아·정동원(미스터트롯)

나훈아를 스타로 만들며 10대 가수상을 안겨준 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남국인 작사, 김영광 작곡의 노래다. 그런데 1969년 5월 20일 발매된 오아시스레코드 앨범 OL12586에는 손석 작사, 유용현 작곡으로 명시돼 있다. 작사자는 당시 오아시스레코드 손진석 사장의 예명이고, 유용현은 유현석 전무의 예명이다. 당시 남국인과 김영광은 지구레코드 소속이었으므로, 경쟁사이던 오아시스에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 테니까요 // 이별이 무어 냐고 물으신다면 /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할 테요 /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 테니까요. (가사 전문)


 남국인·김영광은 1960년대 후반 남진과 나훈아의 인기산맥 구도에 저울추 같은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김영광은 무명가수 남진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올려고 내가 왔나> 작곡가이자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작곡한 인물이다. 남국인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작사해 나훈아에게 줬지만, 1972년에는 <임과 함께>를 남진에게 주기도 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고영남 감독 연출로 1969년 개봉한 같은 이름의 영화 주제가였다.
 고영남 감독의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한 민우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날 혜숙과 하룻밤을 지낸다. 이때 생긴 아이가 민숙이고, 얼마 후에 혜숙에게 민우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온다. 혜숙은 슬픔 속에서 딸 민숙을 데리고 상철과 결혼한다. 몇 해 후 혜숙은 시누이 미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전사를 했다던 민우임을 알게 된다. 민우의 전사 통지서는 6·25전쟁 당시 허다했던 병무행정의 오류였던 것이다. 이에 상철과 혜숙은 민숙을 아버지 민우에게 돌려주기로 한다. 하지만 민숙은 엄마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민우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다. 윤정희·최무룡·남궁원·최인숙이 열연했고, 나훈아가 주제곡을 불렀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딸 민숙이었다.
 1960년대는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하던 미8군 무대를 통한 대중가요 문화의 천이(遷移)와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문화의 서세동진(西勢東進) 등으로 팝과 스탠더드 팝 물결이 넘실거렸다. 대체적으로 스탠더드 팝이 선도하는 흐름이기는 했지만 트로트의 영향력 역시 막강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바다가 육지라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 공원> <가슴 아프게>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의 인기가 이어진 것이 그 증거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음반이 10만장이 넘게 팔린 히트곡이다. 당시 24세였던 최홍기는 음반에 나훈아로 표기했고, 노랫말을 지은 남국인은 26세, 작곡가 김영광과 동갑내기였다. 당시 남국인은 작곡가 백영호 아래에서 작곡 공부를 했으며, 시골 저수지를 찾아다니면서 낚시를 즐겼다. 이때 시골마을 어느 담벼락에 씌어 있던 농작물 씨앗 판매 광고 문구를 보았다. 씨앗이라는 글귀를, 그는 낚시터에서 노랫말을 지었으며, 훗날 남국인 집에 왔던 김영광이 그 가사를 보고 5분 만에 멜로디를 엮었단다. 그리고 가수는 나훈아로 정하고, 음반 취입은 그의 소속(지구레코드)과 경쟁사이던 오아시스레코드인 점을 감안해 작사·작곡자 이름을 오아시스레코드 사장과 전무의 예명을 쓴다. 결국 이 노래는 그해 연말 나훈아에게 MBC 10대 가수상을 안겨준다.
 그때부터 나훈아의 인기 산맥이 형성된다. 팬레터도 하루에 100여 통이나 배송된다. 별난 우편물도 많았다. 어떤 열성 팬은 장차 나훈아와 사이에 낳을 아기의 기저귀와 옷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만나주지 않으면 청산가리를 먹고 죽어버리겠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기도 했단다. 넘치는 인기의 반증이다.
 이 노래는 정인숙 사건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사건은 제3공화국 당시 의문사, 고급요정 종업원 정인숙이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로 피살된 사건 이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총격 살인 사건이었다. 피해자 정인숙(당시 25세)의 본명은 정금지. 그녀는 머리와 가슴 총상으로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의 차(검정색 코로나)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당시 34세)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했으나 인근을 지나가던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정인숙은 당시 출산한 아이 아버지(국무총리 설)와 갈등관계에 있었고, 야당은 사건 배후로 정부 고위층을 지목했다. 당시 정인숙의 아들은 3세, 여인은 당시 최고급요정 선운각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다. 선운각은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됐던 곳으로 요정정치의 산실이다. 1960~1970년대 삼청각·대원각과 함께 대통령과 3부 요인들이 연회를 갖던 곳, 1993년 일반 음식점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할렐루야 기도원 소유가 됐다.
 정인숙은 1945년 대구 출생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대구 부시장을 역임한 정동환의 쌍둥이 딸 중 언니 인숙은 금지, 동생은 옥지였다. 대구 신명여고를 거쳐 이화여대를 지망했으나 낙방하고 명지대를 진학하지만 중도 하차했고, 충무로를 전전하다가 화류계로 흐르며, 옥류장·선운각·삼청각 등에서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사건 발생 1주 후 검찰수사 결과 범인은 오빠로 밝혀졌다. 그는 여동생 운전기사를 하면서 문란한 행실을 계도했으나, 동생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 당시 세간에 풍자(諷刺)된 노래는,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 하겠어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영원히 우리만 알았을걸 /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다(1970년 조윤형 의원이 국회에서 소개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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