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라 두번째 앨범 첫곡 5공시절 건전가요 앨범에도 올라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바람이었나>는 1980년대 서울의 봄 격변 시대의 꼬랑지에 매달린 정부 건전가요 정책기에 탄생한 이별 노래다. 1983년 오아시스레코드 음반 OL-2545에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같이 실렸다.
정수라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이자 공식 1집 앨범. 처음에는 <바람이었나>가 타이틀 곡이었지만, 재녹음하면서 <아! 대한민국>이 타이틀 곡이 됐다. A면에 <바람이었나> <백지 위에 서 있는 인생> <못다 한 시간>을 싣고, B면에 <아! 대한민국> <우리의 땅> <외로운 소녀>가 실렸다.
이제는 너를 잊어야 하나/ 그냥 스쳐 가는 바람처럼/ 파란 미소를 뿌리던 꿈의 계절을/ 모두 잊어야 하나/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우리는 헤매 다녔지/ 조금은 외롭고 쓸쓸했지만/ 그것은 낭만이었지/ 만나면 할 말을 못 하고/ 가슴을 태우면서도/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끝없이 깊어갔는데// 이제는 너를 잊어야 하나/ 그냥 스쳐 가는 바람처럼/ 파란 미소를 뿌리던 꿈의 계절을/ 모두 잊어야 하나// 그날이 언제였던가/ 침묵이 흘러간 뒤에/ 잊어달라는 그 말 한마디/ 아직도 나를 울리네/ 조용히 눈 물을 삼키며/ 뒷모습 바라볼 때는/ 또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제는 너를 잊어야 하나/ 그냥 스쳐 가는 바람처럼/ 파란 미소를 뿌리던 꿈의 계절을/ 모두 잊어야 하나. (가사 전문)
정수라(1963~, 서울 출생, 본명 정은숙)는 11세이던 1974년 CM송 <종소리>로 데뷔를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가수 활동은 <아! 대한민국>을 히트하면서부터라고 해도 된다.
정수라는 10여 년간 CM송 1천여 곡을 불렀다. 초등 5학년 때인 1974년 한국가요제에서 <종소리>로 금상을 수상했다. 그 후 오란씨·금성 냉장고·현대칼라·오양맛살 등 CM송 가수로 활동했고, 1978년 서라벌레코드의 옴니버스 앨범 ‘와이.엠.씨.에이’에서 가요를 처음 녹음했다.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 1977년 결성된 미국의 디스코 음악 그룹)의 <Y.M.C.A> 한국어판이다. 이후 KBS 합창단과 함께 극장용 국산 애니메이션 <별나라 삼총사> OST를 녹음했다.
그녀는 진선여고를 졸업한 1982년, ‘정수라 신곡집’을 처음 발표했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지 못했었다. 1983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두 번째 음반 ‘Jung Soo Ra’를 발매했다. 여기에 실린 B면 1번 곡이 바로 <아! 대한민국>이다. 그 당시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사회정화위원회를 두고 있었다. 이 위원회에서 1983년 KBS와 함께 건전가요 보급을 위한 옴니버스 앨범(주제가 같은 곡을 수록하는 음반) 제작을 추진했고, 그해 7월 ‘즐거운 우리들의 노래’라는 음반으로 나왔다.
이 음반에 정수라는 장재현과 함께 <아! 대한민국> <우리의 땅> 2곡을 노래했고, 이후 오아시 스레코드에서 정수라 정규 음반을 홍보하기 위해 ‘바람이었나 / 아! 대한민국’ 음반을 재발매했다.
이때는 정수라가 솔로로 녹음했다. <바람이었나> <아! 대한민국> 등이 나오기 이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제5공화국이 탄생하는 1979~19 80년 기간을 ‘서울의 봄’으로 통칭한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물결’에 서 차운해 붙여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