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모티브인 영화 ‘카추샤’ 주제곡으로 흥행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명작 소설은 영화가 되기도 하고 대중가요로 환생하기도 한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椿姫)>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손끝을 거쳐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로 태어났다가, 1964년 우리 대중가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로 환생했고, 이듬해 다시 영화로 태어났다. 1961년 송민도가 부른 <카추샤의 노래>는 그 1년 전 유두언 감독의 영화 <카추샤>의 주제곡이다. 최무룡·김지미·김동원·황정순이 열연해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유두언은 1959년에 상연된 톨스토이 원작의 독일 영화 <부활>이 흥행하자, 이를 벤치마킹해 <카추샤>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주제가를 송민도가 불렀다. 이 영화는 국제극장에서 10만 관객을 모았고, 주제가도 크게 히트했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버린/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얼어 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없어라 카추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추샤는 떠나간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 맺은 열매 익기 전에 떠났네/ 내가 지은 죄이기에 끌려가고 끌려가도/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보고파라 카추샤/ 찬 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추샤는 떠나간다. (가사 전문)
카추샤는 러시아 여자 이름, 예카테리나의 애칭이다. 노래속 카추샤(Katyushu)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이다. 소설 속에서 카추사는 귀족 부잣집 아들 드미트리 네플류도프의 하녀로 있다가 그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임신해 그 집에서 쫓겨난다. 타락한 그녀는 매춘부가 된 뒤 살인사건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로 유치되는데, 네플류도프는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그녀를 뒤따라 시베리아에 온다. 이후 복음서의 진리를 탐독하며 부활의 길을 찾는다.
유두언 감독의 영화 <카추샤>는 선민영화사와 백조영화사가 공동 제작했다. 음악 감독은 주제가를 작곡한 이인권이다. 스토리는 일제강점기, 시골 부잣집에서 수양딸같은 식모를 살던 옥녀(김지미)가 방학 때 시골로 내려온 그 집 아들 대학원생 원일(최무룡)과 가까워져 불원(不願)의 아이를 갖는다. 이후 원인은 서울로 가고, 옥녀는 그 집에서 쫓겨난다. 서울로 온 옥녀는 ‘카추샤’라는 이름으로 카바레 여급이 된다. 여기서 옥녀는 불의의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다. 이때 뜻하지 않게 검사(檢事)로 재직하던 원인이 달려오고, 옥녀는 원일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유한철·박성호가 공동 번안한 것을 각색한 작품이다.
송민도는 1925년 수원 출생이다. 송민숙·백진주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947년 한국방송공사 전신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로 발탁됐다. 본명은 유혜준, 밝은 호수라는 뜻의 유호(兪湖)는 예명 호동아와 같은 사람이다. 1921년 해주 출생으로, 동양극장 미술부와 문예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인권(본명 임일일)은 1919년 정진에서 출생해 1973년 향년 54세로 타계했다. 데뷔 곡은 1938년 박시춘의 <눈물의 춘정>이고, 이때부터 이인권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오케레코드 전속으로 활동한다.
영화 <카추샤>는 1971년 김기덕 감독이 신성일과 문화를 주인공으로 컬러 영화로 리메이크하는데, 이때는 김부자가 주제곡을 리바이벌한다. 또한 1970년대에 송민도가 다시 녹음했고, 나훈아·은방울자매·박일남 등이 리메이크를 했으며, 1973년 발표한 김부자의 노래가 가장 크게 히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