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9.29 (화)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www.chihak.co.kr/news/21265
발행일: 2026/04/30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㊶
1978년 꽃밭에서 : 최한경·이종택/이봉조/정훈희

데뷔 40만장 판매 기록한 정훈희 제2의 전성기 시작 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정훈희의 노래는 언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불가능할 정도의 고음에서도 전혀 힘들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리하지 않는 편안함은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 미국 가수)가 말하는 좋은 가수의 기본 요건 중 하나다. 정훈희의 목소리는 화이트와인처럼 목 줄기를 감아 돌아 가슴속의 호수로 흘러드는 실크 결의 소리, 꾸밈없는 천상의 울림이다. <꽃밭에서>는 26세 정훈희의 꽃밭이었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루루루루 루루루루//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루루루루 루루루루. (가사 전문)

 

 정훈희는 1952년 부산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밴드마스터였던 숙부, 큰오빠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름방학을 맞아 부산에서 서울로 온 정훈희는 서울 남대문 인근 호텔에서 그 호텔 나이트클럽 악단장이던 작은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줄리 런던(Julie London, 본명 Gayle Peck, 개명 Julie London Gayle Peck Webb Troup, 1926~2000, 미국 여성가수)의 <러브 레터(Love Letter)>다. 당시는 미8군 부대에 출연하던 20~30대 가수들만 팝송을 부를 줄 알던 시절이다.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 클럽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1967년 당시 최고의 작곡가이던 이봉조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클럽을 찾았고, 16세 정훈희의 노래를 듣고 처음 던진 말이다. 이봉조가 여고생이 부르는 재즈풍의 발라드에 반한 것이다. 이봉조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색소폰 연주곡으로 발표했던 <안개>의 LP판을 건네며 “집에 가서 멜로디를 외워오라.”고 했다. 2~3주 뒤, 이봉조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인 탓에 야간 녹음을 하기 위해 순경을 앞세우고 정훈희를 데리러 왔다. 정훈희는 처음 찾은 스튜디오에서 신성일·윤정희 주연의 영화 <안개>의 주제곡인 <안개>를 릴테이프에 녹음했다. 일단 KBS·MBC·동아방송에 보내기 위해 데모 음반으로 세 개의 릴테이프에 녹음했던 것이다. 이것을 방송 3사에 갖다줬는데 테이프 쟁탈전이 벌어졌다. 며칠 만에 다른 노래를 10곡 더 녹음해 재킷 사진도 못 찍고 첫 음반을 냈다. 이것이 40만 장이나 팔렸다. 이것이 정훈희의 가수 데뷔 스토리다.

 그녀는 1988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아테네 국제가요제에서는 <너>라는 곡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유일하게 수상했다. 1989년 칠레가요제에서는 <무인도>라는 곡으로 3위와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91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고, 1년 후 해금돼 <꽃밭에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렇게 한창 우리나라 인기가수로 거듭나던 정훈희는 가수 김태화(1950~)와 결혼한 후 임신한 상태로 남편과 함께 <우리는 하나>라는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30여 년 만인 2008년에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 라는 독집 앨범을 발매했다. 또한 <살짝쿵>은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를 리메이크 한 곡이다.

 조선왕조 세종 임금 시절 최한경(생몰 미상)의 시 <좌중화원(坐中花園)>이 바로 <꽃밭에서> 시다. 최한경은 세종 26년 진사로 급제해 세조 12년 강원도 관찰사로 관직을 마쳤다. 그의 일생을 기록한 <<반중일기>>에 <좌중화원(坐中花園)>(꽃밭에 앉아서)이라는 시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간직했던 고향의 첫사랑 이웃집 처녀를 생각하며 성균관 유생 시절 지은 시다. 옛 시와 노랫말이 같다. ‘坐中花園(좌중화원) 꽃밭에 앉아서/ 膽波天業(담파요업)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혜혜미색) 고운 빛은/ 云河來矣(운하래의)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基花(작작기화) 아름다운 꽃이여/ 河被矣 (하피의) 아름다운 꽃이여/ 斯于吉日(사우길일) 이렇게 좋은 날에/ 吉日于斯(길일우사)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군자지래) 그 님이 오신다면/ 云何之樂(운하지락) 얼마나 좋을까’(이하 생략).

 


관련기사
유차영의 아랑가 ㊵  치학신문 (03.25)
유차영의 아랑가 ㊴  치학신문 (03.13)
유차영의 아랑가 ㊳  치학신문 (02.26)
유차영의 아랑가 ㊲  치학신문 (02.12)
유차영의 아랑가 ㊱  치학신문 (01.29)
유차영의 아랑가 ㉟  치학신문 (12.13)
유차영의 아랑가 ㉞  치학신문 (11.28)
유차영의 아랑가 ㉝  치학신문 (11.14)
유차영의 아랑가 ㉜  치학신문 (10.17)
유차영의 아랑가 ㉛  치학신문 (09.26)
유차영의 아랑가 ㉚  치학신문 (09.12)
유차영의 아랑가 ㉙  치학신문 (08.29)
유차영의 아랑가 ㉘  치학신문 (08.14)
유차영의 아랑가 ㉗  치학신문 (07.25)
유차영의 아랑가 ㉖  치학신문 (07.11)
유차영의 아랑가 ㉕  치학신문 (06.28)
유차영의 아랑가 ㉔  치학신문 (06.13)
유차영의 아랑가 ㉓  치학신문 (05.30)
유차영의 아랑가 ㉒  치학신문 (05.16)
유차영의 아랑가 <21>  치학신문 (05.01)
유차영의 아랑가 <20>  치학신문 (04.17)
유차영의 아랑가 ⑲  치학신문 (03.28)
유차영의 아랑가 ⑱  치학신문 (03.14)
유차영의 아랑가 <17>  치학신문 (02.28)
유차영의 아랑가 ⑯  치학신문 (02.14)
유차영의 아랑가 ⑮  치학신문 (01.25)
유차영의 아랑가 ⑭  치학신문 (12.29)
유차영의 아랑가 <13>  치학신문 (12.13)
유차영의 아랑가 ⑫  치학신문 (11.29)
유차영의 아랑가 ⑪  치학신문 (11.15)
유차영의 아랑가 <10>  치학신문 (09.27)
유차영의 아랑가 <9>  치학신문 (09.12)
유차영의 아랑가 <8>  치학신문 (08.29)
유차영의 아랑가 ⑦  치학신문 (08.14)
유차영의 아랑가 ⑥  치학신문 (05.30)
유차영의 아랑가 ⑤  치학신문 (05.16)
유차영의 아랑가 <4>  치학신문 (05.01)
유차영의 아랑가 <3>  치학신문 (04.12)
유차영의 아랑가 ②  치학신문 (03.29)
유차영의 아랑가 ①  치학신문 (03.14)
유차영의 아랑가 ㊷  치학신문 (05.14)
유차영의 아랑가 ㊸  치학신문 (05.28)
유차영의 아랑가 ㊹  치학신문 (06.12)
유차영의 아랑가 ㊺  치학신문 (06.26)
유차영의 아랑가 ㊻  치학신문 (07.15)
유차영의 아랑가 ㊼  치학신문 (07.30)
유차영의 아랑가 ㊽  치학신문 (08.15)
유차영의 아랑가 ㊾  치학신문 (08.28)
유차영의 아랑가 ㊿  치학신문 (09.29)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오스템 배너
 
  l   신문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회사명 : 주식회사 치학신문  |  07225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18길 5
광고접수 : 02-2632-6858(대표)  |  편집국 : 02-2679-9389  |  출판국 : 02-2633-9389, 02-2679-6820  |  팩스 : 02-2671-9389
제호 : 치학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6464  |  등록일 : 1987년 08월 07일
명예회장 : 임채균, 이재윤  |  회장 : 김홍기  |  발행인 : 장백용  |  편집인 : 심영섭
치학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치학신문은 신문윤리강령 및 주간신문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7 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chihak@daum.net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