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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7/25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㉗
1967년 마포종점 ② : 정두수/박춘석/은방울자매

마포 전차 종점에서 죽은 남편을 기다리던 슬픈 사랑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지난호에 이어>


 미국 유학을 가 있던 남편이 과로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하자,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인은 늦은 밤이면 신혼 초에 살던 사글셋방이 있던 마포종점으로 나갔다. 그곳을 미친 듯 배회하며 기다렸지만 세상을 떠난 남편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1966년 여름, 나는 궂은비를 맞으면서 마포 전차 종점에 나가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던 애절한 연인의 슬픈 사랑을 담은 노래시를 썼다.’
 당시 정두수가 일하던 지구레코드공사는 수도극장과 명보극장이 있던 스카라 계곡, 하지만 박춘석·이미자·하춘화·차중락·남진·나훈아 등은 설렁탕집(마포옥)을 아지트로 삼았단다. 마포는 당시 변두리였는데도 전차 때문에 교통이 편리해 설렁탕집이 많았다. 이 노래를 녹음할 당시 큰 방을 박애경은 만삭이었다. 1964년 이미자가 <동백아가씨>를 녹음할 때와 현미가 <떠날 때는 말없이>를 녹음할 때와 같은 상황 역시 ‘만삭에 녹음한 노래는 히트한다’라는 당시 속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나라 전차 첫 운행은 1899년 동대문에서 경희궁을 거쳐 흥화문까지 개통한 동대문~서대문 구간이다. 이후 청량리에서 마포까지 연장됐고, 1968년 11월 30일 전면 운행을 정지한다. 그때 마포종점은 지금의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국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 노면전차는 해방 이후 경성전진기주식회사(한전)에서 운영했으므로 경전전차(京電電車) 또는 경전(京電)으로도 불렀다. 총 연장 40.6km, 좌측통행으로 역은 72개였다. 당시 전차는 40인승 차량 8대와 황실 전용 귀빈차 1대로 구성돼 있었으며, 당시 기관사는 일본인, 차장은 한국인을 채용했다. 당인리발전소는 서울화력발전소다. 마포구 당인동에 있으며, 국내 최초 화력발전소로 1929년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착공해 1930년 준공했다. 당인동(唐人洞)은 명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던 곳으로 중국인을 당나라 사람, 당인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단다. 일설에는 양화나루터에 공품 (貢物)을 나르는 배들이 드나들었으므로, 항상 많은 사람이 왕래했다는 다인동(多人洞)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여의도 비행장은 1916년부터 1958년까지 사용한 공항. 이후 공군기지로 쓰이다가 1971년에 폐쇄됐다. 건설 당시는 고양군 용강민(여의도), 1953년 국제공항으로 승격 됐으며, 1958년 민간공항 기능을 김포군 양서면(강서구) 김포국제공항으로 이전하며, 1971년 공군기지 기능도 성남 공군기지(서울공항,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로 이관 한다. 1922년 12월 10일, 한국인 최초 비행사 안창남이 이곳에서 시범 비행을 했다. 1997년 마포구 도화동 어린이공원에 <마포종점>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 발표 30년 만이다.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노래비에 이은 서울의 두 번째 노래비였다. 마포(麻浦)는 삼개로 불렸던 포구 이름을 한자명으로 한 데서 유래한다.
 여의도(汝矣島)는 용의 입에 물고 있던 여의주(如意珠)에서 유래한 지명이 아니다.
 현재 사용하는 여의도동의 1914년 이전 명칭. 1910년 일제는 경성부를 경기도에 예속 시켰으며, 1911년 경성부 성의 지역 8방을 8면으로 고쳤는데 이때 여의도는 연희면에 속했다. 1914년 성의 8면을 고양군으로 개편할 때 여의도는 건너편의 율도(밤섬)와 함께 용산면과 서강면을 합한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가 됐다. 섬의 별칭은 양화도·나의주섬·하중도로 불렸으며,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은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한자화됐단다. 여의도의 여는 ‘너 여(汝)’, 이순신 장군의 호 ‘여해(汝譜)’와 같을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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