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그날”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최초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2020년 1월 9일, 미스터트롯 2회에서 장민호는 <봄날은 간다>를 불러 심사위원 마스터들로부터 올 하트를 받았다. 장민호의 무대를 본 작곡가 마스터 조영수는 “장민호 같은 분을 정말 많이 봤다.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여러 장르를 옮겨 다니지 않았나.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 중간에 포기한다. 그런 분들한테 장민호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22년간 여러 장르를 했던 게 헛되지 않은 것 같다. 다양한 창법이 녹아 있다”고 칭찬의 심사평을 선사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가사 1절)
<봄날은 간다> 노래 속의 봄날이 현재진행형으로 지나가던 때는 1953년, 봄꽃이 만발하였다가 흐느적거리면서 지던 때다. 6·25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대구에서 백설희가 발표한 봄의 서정. 이 노래는 우리나라 시인 100명이 응답한, 광복 이후의 대중가요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곡이다. 멜로디 부문 1위곡은 <이별의 부산정거장>(보슬비가 소리도 없이~)이었다.
1절 가사 뒤에는 중간 대사가 읊조려진다.
“봄은 머물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지만 / 내 마음속의 그윽한 향기만 남기고/ 밤에는 푸른 별들이 속삭여 주고/ 낮에는 맑은 시냇물가에/파랑새 노래소리 정다운/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무릎을 꿇고서 우는 소녀는 / 백조의 포근한 나래 밑에서 잠들었다/ 은혜로운 달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밤/ 나리꽃 짙은 향기 풍겨나는/ 소녀의 아름다운 꿈은/ 천사는 고이 간직해 두었으리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 새가 날면 따라 웃고/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가사 2~3절)
당시 26세였던 본명 김희숙, 백설희는 1927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6세이던 1943년부터 조선악극단 음악무용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녀는 영화배우 황해 (1922~2005, 본명 전홍구)의 아내이며, 가수 전영록(1954~, 서울 출생)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걸 그룹 티아라 전보람의 할머니이기도 하다.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가 유니버설레코드 시절에 <아메리카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내놓은 작품이다. 그녀는 2010년 5월 5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고혈압 합병증으로 이승을 등졌다. 지나간 봄날의 꽃잎처럼.
봄은 가도 사람은 남고, 사람은 가고 오지 않아도 그의 노래는 대중의 가슴속에 흐르며 애창된다.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리면서 짧은 인생보다 더욱 긴 영원하기도 한 예술을 음유해 본다. 하늘이 내려준 계절은, 꽃 피는 봄날에는 가슴을 설레게 하고, 먹구름 소나기 속의 천둥번개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오색창연한 갈바람을 마주하면 인생의 무게를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다시 흰 눈이 내리면 지나간 인생의 봄날을 회억하며 <봄날은 간다> 노래를 읊조리게 된다. 아 불그레한 인생이여, 13월의 봄꽃을 기다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