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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6/26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㊺
1983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박춘석/박춘석/패티김

패티김의 인생 스토리를 생각하면 길옥윤이 떠오르는 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사랑은 가도 가을은 남는다. 가을은 겉으로는 마르고 시들어도 속으로는 오히려 영근다. 이렇게 영근 가을은 새봄에 다시 깨어나, 마르고 시든 뿌리와 가지에서 새순을 돋아나게 한다. 하지만 한번 떠나간 사랑이 다시 오기는 쉽지 않다. 누가 가음을 남기고 떠났는가. 사랑을 남겨두고 떠나가는가. 갈잎 서걱거리는 마른 날에, 마흔넷 가을을 닮은 여인 김혜자(패티김의 본명)를 남겨두고 떠나간 그 사람은 누구였던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 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가사 전문)


 이 노래 속에서 가을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은 당시 44세 길옥윤(본명 최치정)이다. 그는 1927년 영변에서 출생했으며, 작곡가와 색소폰 연주자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음악의 거장(巨匠)이다. 그는 식민지시대와 해방 정국,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양 대중음악이 무차별적으로 밀려들어 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우리 정서를 가진 음악으로 발전시킨 대중음악가로서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경성치과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재즈에 심취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음악클럽을 전전하다가 8·15해방 직후 박춘석·노명석과 그룹 핫팝을 만들어 미군 부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1962년에는 데뷔 곡 <내 사랑아>를 현인이 불러 히트시켰는데, 그해 가수 패티김을 만나면서 그의 음악인생은 전기를 맞았다. <4월이 가면> <사랑하는 마리아> <서울의 찬가> 등 그가 작곡한 수많은 곡을 패티김이 불렀고, 1966년 패티김과 결혼함으로써 그들의 로맨스도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둘은 1973년 이혼을 한 뒤 길옥윤의 음악 활동은 침체됐으나, 1976년 신인가수 혜은이(제주 출신, 본명 김승주)를 발굴해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재기하고, 그녀를 통해 <제3한강교>(한남대교), <감수광> 등의 히트 곡을 연이어 발표했다.
 1980년 28세 연하 전연란과 재혼한 그는 서울올림픽 폐회식 음악(<아침의 나라에 서>, 박건호 작사, 길옥윤 작곡, 김연자 노래)을 작곡하고, 1988년 음악카페 창고를 운영하다가 빚을 지고는 달아나듯 일본으로 간다. 이때도 역시 재즈와 가요 작곡가로서, 색소폰 연주가로서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에도 길옥윤은 마셜제도(1986년 미국으로 부터 독립) 애국가와 <부산찬가>를 작곡했으나 1994년 폐암 선고를 받고 삶의 끝자락을 맞는다. 그는 그해 6월 일본에서 귀국했고, SBS 서울방송이 마련한 ‘이별의 콘서트’ 에서 <사랑은 영원히>를 휠체어에 앉은 채 발표했다. 이후 척추암까지 겹쳤으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쉬지 않고 작곡을 하다가 그해 10월 영구 귀국해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다가 1995년 3월 17일 향년 68세로 작고했다.
 가을은 마음속의 빈 원고지다. 그 텅 빈 마음의 눈금 안에 하나하나의 서정을 채워갈 때 비로소 가을은 완성된다. 다람쥐와 알밤이 그러하고 기러기가 그러하고 하이얀 억새꽃과 붉은 단풍과 파아란 하늘이 그러하다. 패티김에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바로 길옥윤, 최치정이었다. 방랑시인 바람벽 같은 길삿갓.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우수(憂愁)에 잠긴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자꾸 말을 걸어오면 고향을 생각하고 옛사랑을 생각한다.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 767?~830?)은 이런 가을을 <추사(秋思)>라는 시로 음유했다. ‘낙양성에 건듯 가을바람이 불어와/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려니/ 생각은 천 가지 만 가지/ 행여 바삐 쓰느라 할 말 다 못 하였나 걱정되어/ 인편 떠날 무렵 봉투를 다시 뜯네.’ 이런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머리를 수그리고 고향을 생각한다. 대중 앞에서 절창을 한 저녁나절 옛사랑 생각에 가슴 졸였을 패티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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