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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5/16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⑤
1942년 찔레꽃 : 김영일 / 김교성 / 백난아 / 백난아

“보릿고개에 피어난 분홍빛 해당화를 노래해”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최초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 찔레꽃이라는 노래는 연분홍 해당화가 소재인데, 부르는 사람들은 하얀색 들찔레꽃을 연상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백난아가 부른 이 곡은 가사보다 오프닝 대사가 당시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의 풍운이 휘몰아치던 날 /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슬픈 별 아래 서야 했다 / 절망의 황혼, 우리는 허수아비였다 / 슬픈 앵무새였다 / 남의 나라 전쟁터로 끌려가던 / 젊은이들의 충혈한 눈동자가 / 그 절망의 황혼을 보고 있었다 / 처녀들은 정신대에 뽑혀 갈까봐 / 시집을 서둘렀지 / 못 견디게 가혹한 그 계절에도 / 찔레꽃은 피었는데 / 우리는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는데···.”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에 젖어/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 삼 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겁던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가사 전문).


 오프닝 대사의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은 당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스스로 사용하던 용어다. 일본제국이 그들의 야욕을 미화하여 사용한 명칭. 태평양전쟁이라고 사용함이 옳다. 이 노래는 KBS 가요무대 역사상(1985.11.4 첫 방송) 가장 많이 신청된 곡이다. 1942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3월 백난아가 태평레코드에서 발표했으나 당시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해방과 더불어 약속이나 한 듯이 인기에 날개를 단다.
 노랫말은 남북한 분단 후 일부가 개사되었다. ‘동무야’를 ‘친구야’로, ‘세 동무’를 ‘동창생’으로, ‘백인사진’을 ‘박은 사진’으로, ‘북간도’를 ‘내 고향’으로, ‘그리운 고향아’는 ‘즐거운 시절’로 찔레꽃이 피는 시기(5월경)는 보릿고개다. 그 시절 우리의 부모형제들은 야생 찔레의 연한 순을 꺾어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그래서 찔레꽃은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런데 이 노래 속의 찔레꽃은 바닷가 모래 둔치에 많이 서식하는 해당화다. 백난아가 태어난 제주도 해변과 연관이 있고, 성장한 청진 바닷가와 관련이 있으리라. 하지만 애창자들은 푸른 대궁 찔레를 꺾어 먹던 하얀꽃을 연상한다. 장사익이 부른 노래 속의 찔레꽃처럼….
 당시 19세였던 본명 오금숙, 백난아는 1923년 제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방어를 낚는 어부. 이후 청진으로 이사(아버지가 경찰을 하면서, 조선사람을 많이 봐준다고 하여 청진 지역 경찰서로 전근됨)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서울에서 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한뒤, 1940년 태평레코드 콩쿠르에서 <오동동 극단>으로 입상하여 데뷔했다. 17세였다.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전국가요콩쿠르’에서 2위를 했다. 데뷔 음반은 <오동동 극단>, <갈매기 쌍쌍>으로 두 곡은 같은 음반, 처녀림 작사, 무적인 작곡이다.
 백난아 예명은 백년설이 붙여준 이름. 난아는 난초처럼 청아하다는 의미. 그녀는 해방 전까지는 태평레코드 전속, 해방 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했고, 1949년부터 럭키레코드 전속으로 활동했다. 이후 6·25한국전쟁 발발로 대구로 피난하여 군예대 활동을 했고, 1960년대는 극장무대에 섰다가 TV시대에는 가요무대에 종종 출연했다.
 백난아의 대표곡은 <황하다방>, <망향초 사랑>, <무명초 항구>, <북청 물장수>, <간도선>, <직녀성> 등이다. 해방광복 후 그녀는 서울·부산 등지의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했다. 1960년대까지 악극단 공연에 참가해 <내 고향 해남도>, <님 무덤 앞에>, <금박댕기>, <호숫가의 엘레지>, <봄바람 낭낭>, <낭랑 18세> 등을 열창했다.
 그녀는 1992년 지병이던 심장병으로 향년 70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2007년 제주 한림읍 명월리에는 백난아 노래를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에 의해 찔레꽃노래비 공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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