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전향후 트로트 대표주자 된 현철의 두 번째 히트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사랑은 나비인가 봐>는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가수 홍경민이 특이하게 리메이크해 원곡 가수 현철과 시청자를 놀라게 한 노래다. 리메이크 가사가 특이하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 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랑/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주고 간 사람/ 그리운 내 사연을 뜬 구름아 전해다오/ 아아아~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무슨 나비/ 호랑나 비······.' 이런 기발한 가사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랑/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주고 간 사람/ 그리운 내 사연을 뜬구름아 전해다오/ 아~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랑/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주고 간 사람/ 그리운 내 사연을 뜬구름아 전해다오/ 아아아 아아아~/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가사 전문)
<사랑은 나비인가 봐> 발표 당시 현철(본명 강상수)은 37세였다. 1945년 김해 대저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 동성고를 졸업하고 동아대에 진학했으나 1965년 중퇴하고, 2009년 44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1969년 23세에 <무정한 그대>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이후 18년 동안 무명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해 활동해오다가 1980년에 그룹을 해체하고, 1982년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으로 솔로로 전향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 <청춘을 돌려다오>로 인기를 이어간다. 특히 현철의 인기가수 반열 등극은 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 근로자 위문공연을 할 때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중동 지역 파견 현지 근로자들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노래 속의 당신은 현철의 부인 송애경이다. 이후 1988년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면서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 무명가수 시절을 회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이때부터 현철의 가수인생은 대반전됐다. 이후 <싫다 싫어> <사랑의 이름표> <내 마음 별과 같이> <아미새> 등 연속으로 히트를 한다. 현철이 불러 히트한 대중가요, 유행가의 주 장르는 트로트다.
트로트(Trot)는 일본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우리나라로 전래된 장르로, 일본 엔카가 우리나라에 현지화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트로트라는 이름은 서양음악의 춤 곡 중 하나인 폭스트롯(fox trot)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것이 일본 토속 음악에 접목돼 엔카가 됐고,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던 세 박자 또는 다섯 박자 (3+2)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 트로트라 부르고, 빠른 두 박자(쿵짝, 쿵짝...)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 뽕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로의 전래 시기는 1920~1940년대로 보면 된다. 일본에서는 보통 빠르기 템포를 가진 엔카를 안단테 트로트(Andante Trot), 조금 느린 템포는 미디엄 트로트(Medium Trot)라고 표기하는데, 엔카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트로트(Trot) 리듬은 다름 아니라 1914~1917년 사이에 미국에서 생겨난 댄스 리듬인 폭스트롯(Fox Trot)이다.
트로트(trot)는 빨리 걷다 속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트로트를 우리나라에 적용한 노래는 1934년 발표된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이듬해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이어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과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으로 연결된다. 이후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 6·25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가요는 트로트 리듬을 타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국민과 함께해왔다. 이후 1980년대 초반에는 트로트 메들리 붐이 생겨났으며, 노래를 1절씩만 엮어 만든 빠른 템포의 댄스 곡으로 편곡돼 보급되면서 이른바 뽕짝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가 당시 크게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