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 저음 가수 문주란을 스타로 만들어준 데뷔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동숙의 노래>는 문주란의 데뷔 곡이며, 1964년에 개봉된 임원직 감독의 <최후전선 180리>라는 6·25전쟁 영화의 주제곡이다. 줄거리는, 시골아가씨 동숙이 서울에 와서 동생들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공단에 취직을 하며, 또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다가 학원 선생을 사랑하게 되고, 배신을 당하고, 복수를 하는 사연이다. 당시 영화는 별로 히트하지 못했지만, 주제곡 <동숙의 노래>는 크게 히트해 신인가수 문주란을 스타로 만들었다. 문주란은 당시 16세였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 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때는 늦으리//
중간 대사는 영화 주제곡답게 노랫말의 서정성과는 다른 강렬한 어휘로 엮었다. ‘내 조국 내 겨레여 내 하늘 내 강토를 지켜 가는/ 여기 용감무쌍한 사나이들이 있다/ 우리들에 사명은 너무도 크고 벅차다/ 온 누리 이름 떨친 검은 베레모는/ 끝없는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오늘도 날은다 펴진다 하늘에 백장미/ 우리는 낮도 밤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아, 동숙아~동숙아~/ 얼마나 그리운 이름 이었던가.’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 가는 서러운 이 몸/ 저주받은 운명이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음~뜨거운 눈물, (가사 전문)
<동숙의 노래>를 부른 문주란은 매혹적인 저음 가수, 본명은 문필련, 그녀는 1950년 부산 전포동에서 출생했다. 1966년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후 1,700여 곡의 노래를 발표했다. 그녀가 처음 노래를 한 곳은 부산의 음악감상실 그린하우스다. 이곳은 부산 광복동 미화당백화점 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기서 매일 노래자랑이 열렸다. 부산에서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은 모두 모여들었다.
문주란도 여기에 참여해 종종 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부산예술학원에서 현철·서용수 등과 함께 1년 남짓 노래를 배운 뒤 작곡가 유금춘 사무실 소속으로 부산쇼단 단원으로 공연을 다녔다. 1962년 부산MBC 가요콩쿠르 입상을 계기로 가요계에 나왔으나, 자신의 노래를 취입하기 전 선배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 등을 불러 천재 소녀가수란 평을 듣는다. 그러던 중 1965년 백영호가 작곡한 영화 주제가 <동숙의 노래>를 취입해 대히트를 함으로써 스타의 길에 접어들었다.
영화 <최후전선 180리>는 6·25전쟁 당시 특공대원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으로 남궁원·이대엽·김운하·김석훈이 열연했고, 남궁원의 애인으로 태현실이 열연했다. 영화 속에서 적진(敵陣) 깊숙이 침투한 특전대원들은 적의 화약고를 폭파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다. 그러나 그들은 적군과의 치열한 교전 중 모두 전사하고 만다. 이 노래는 1966년 발표로 기록됐지만, 1964년 탄생했다. 영화 속 주제가가 음반보다 2년 빨랐다. 문주란의 아버지는 운수업을 하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 새 엄마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비정한 여인으로 회고한다. 데뷔 당시 아버지의 극한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20세가 넘어서야 화해를 했단다.
문주란이 출생한 전포동(田浦洞)은 산자락에 마음과 논밭이 있었는데, 갯가에 위치해 밭개(밭 귀퉁이)라 했고 한자로 전포리(田浦里), 밭이 있는 포구라 했다. 동래군 서면(西面)에 속했다가 1896년 부산부에 편입됐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다시 동래군 서면 전포리로 된다. 이어 1936년 부산진 출장소로, 1949년 부산시로, 1957년에 부산진구에 속한다. 전포동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둘째날(1592년 4월 14일) 순절한 장군 송상현(宋象賢, 1551-1592) 광장이 있는 곳이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첫날인 1592년 4월 13일 부산진성(성주, 정발)을 4시간 만에 함락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다음 날 동래성을 공격하고, 이때 동래부사이던 송상현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사로잡혀 처참하게 순절한다.
동래성을 공격할 때 왜병이 남문 밖에 목패(木牌)를 세우고,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달라'고 하자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목패에 글을 써서 붙이고 결사 항전을 했다. 그가 순절하자 그의 첩 금섬도 그를 따라 순절했단다.
중저음의 매력, 문주란도 인생 황혼고개를 올라서고 스스로의 삶을 진솔하게 희억하며 민낯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만큼 무르익었다. 근래 그녀는 종편 예능프로그 램에 출연해, 여성으로서 스스로의 인생은 실패작임을 토로했다. 비운의 가정사도, 유부남과의 첫사랑 얘기도 진지했다. 동료 가수와 스캔들, 결혼도 못 하고 자식도 낳아 보지 않은 회억(回憶)에 곁들여 19세 무렵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던 사연도, 그 시대와 오버랩하며 되돌아보았다. 가평군 청평면 삼화리 북한강변에 가면 문필련의 생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 운영하는 이 라이브카페에 하루를 담고 산다. 이 곳에 가면 <동숙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