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을 겪은 대중의 감성적 욕구에 맞는 절창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이 노래는 3S(Sex, Screen, Sports) 정책 끝자락에서 부활한 전통가요의 대표곡이다. 발라드에서 전통가요의 부활로 이어가는 포장도로(鋪裝道路)인 셈. 제6공화국 보통사람 노태우는 취임 일성으로 대중의 감성 물길을 대중가요(전통가요 부활)로 전환 한다. <베사메무초>를 아코디언으로 연주하고, 지르박 춤을 즐기는 그의 감흥이 국가 정책에 반영된 것이었다. <신사동 그 사람>은 1989년 정은이가 가사를 쓰고 그녀의 남편 남국인이 가락을 입힌 후 28세의 주현미의 간드러진 목청을 탄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 봐// 희미한 불빛 사이로 오고 가던 그 눈길 어쩔 수 없어/ 나도 몰래 마음을 주면서 사랑한 그 사람/ 오늘 밤도 행여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마음 설레며/ 그 사람 기다려도 오지를 않네/ 자정은 벌써 지나 새벽으로 가는데/ 아~내 마음 가져간 사람 신사동 그 사람//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 봐. (가사 전문)
주현미는 수식어가 많다. 촌태 나는 고상한 매력, 독특한 목소리 호소력, 트로트라는 가요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가수, 내 노래건 네 노래건 부르는 대로 히트 등. 그녀는 1980년대 후반 시대 이념의 시류(時流)를 타고 '유행가=뽕짝=트로트=전통가요'라는 감성적 등식(等式)을 만들며 인기 급상승 가도를 달린다. 애절한 호소력과 비탄조의 흐느적거리는 창법, 자지러지게 꺾이고 곰실거리는 매혹적인 음색을 독보적으로 소유한 그녀는 1961년 광주 서석동에서 중국인 주금부와 한국인 정옥선 사이의 장녀로 출생했다. 아버지가 일본과 대만을 오가며 한의사를 했던 탓에 어머니와 같이 외가가 있는 전북 김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7세 무렵 화교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왔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1981년 중앙대 약대 음악동아리 '진생라딕스' 일원으로 강변가요제에 출전하면서 시작된다. 선배가 주현미도 합류할 것을 권해 이에 응했던 것. 그 해 강변가요제에 출전한 이들은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로 장려상을 받았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동백 아가씨>를 잘 불렀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자 스페셜 아워 모창대회에 출연해 <잊을 수 없는 연인>으로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오아시스 손진석 사장, 작곡가 이인권과 연결돼 옴니버스 앨범 300장을 찍었다. 1984년 대학 졸업 후 서울 중구 필동에 한울약국을 개업한 후 작곡가 정종택의 도움으로 음반사를 찾아 오디션을 받는다. 하지만 촌티 나는 목소리, 텔레비전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 등을 이유로 퇴짜를 받았다. 이후 1984년 12월, 김연자·백승태의 메들리 음반이 유행하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이를 시도하며 조미미와 협의하지만 개런티 문제로 취입을 못하고, 주현미가 대타 녹음을 했다. 주현미의 '쌍쌍파티 메들리'를 출시(出市)했던 것이다. 이것이 하루에 1만 장씩, 졸지에 300만 장이 팔린다. 이후 1986년 재미 동포 위문 공연에 조용필·나미 등과 같이 참여하며, 이때 남편 임동신을 만나 1988년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보컬그룹 비상구의 가수. 남편은 주현미보다 4세 위다.
3S는 '섹스·스크린(영화)·스포츠'의 이니셜, 전두환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다. 이때 1986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 열기를 달군다. 다음 정권 보통사람을 외치던 노태우는 이것을 전통가요 부활로 시대 이념의 물길 방향을 튼다. 이때부터 트로트 삼국시대가 다시 열리고, 현철·태진아·설운도·송대관·주현미 등의 기성세대 물결이 넘실거리고, 문희옥·박상철·장윤정·박구윤 신유·박현빈으로 이어지는 신세대 트로트 물줄기가 강물이 돼 흘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현미는 1988-1989년 MBC 가수왕을 연거푸 수상했다. 1985년 정통 트롯 4분의2 박자가 아닌 4분의3 박자 <비 내리는 영동교>를 발표해 대박을 낸다. 1988년 발표한 이 노래 <신사동 그 사람>은 전통가요 부활이라는 정책적 트렌드와 1980년대 서울의 봄(정치적 민주화 물결) 터널을 빠져나온 대중의 감성적 욕구를 맞장구치게 한 절창이었다. 당시 그녀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10대 팬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다. 한국 대중가요계의 대중적 반응 체질의 변화 조짐이었다.
신사동(新沙洞)은 서울 강남구에 속한 동네다.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던 한강 새말 (新村, 새마을)과 사평리(沙坪里)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새말은 한남대교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 사평은 한강 변 모래 벌,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신촌, 사평리였으며, 1914년 새말·사평리를 합해 경기도 광주군 신사리로, 1963년 서울시 성동구 신사동으로, 1975년 강남구 신사동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