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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7/11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㉖
1967년 마포종점 ① : 정두수/박춘석/은방울자매

트롯풍을 노래한 첫 걸그룹이 부른 서울을 함축한 곡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대중가요 속에는 역사의 궤적이 씨줄 날줄로 엮여 있다. 한국 근현대사 중 서울을 함축한 단 한 곡의 대중가요를 꼽으면 단연코 <마포종점>이다. 이 곡은 1968년 마포구 도화동에 살고 있던 정두수가 노랫말을 지었고, 마포 설렁탕집 단골이던 박춘석이 가락을 엮었다. 가수는 은방울자매, 큰 방울은 박애경, 작은 방울은 김향미였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 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 하나/궂은비 나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가사 전문)


 은방울자매는 1954년경부터 각각 활동을 시작해 1962년에 여성 듀엣을 결성했다. 박애경은 1956년 <한 많은 아리랑>으로 데뷔해 영화 <가거라 슬픔이여> 주제가 <재수와 분이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고, 김향미는 1959년 <기타의 슬픔>으로 데뷔해 영화 주제가 <스타 탄생>을 불렀다. 둘은 극장 쇼 무대에서 콤비로 부르는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자, 당시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던 고마도리 듀엣 자매를 몰 모델로 삼아 듀엣을 결성한다. 큰 방울 박애경(본명 박세말)은 1937년 경남 밀양 출생으로, 부산에서 성장했으며 부산여상 3학년 재학 중 국제신문사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2등을 했다. 이때 심사위원 이재호에게 발탁돼 1956년 무적인 작사, 이재호 작곡의 <한 많은 아리랑>으로 데뷔했다. 박애경은 그 후 방윤아와 듀엣으로 <재수와 분이 의 노래>를 불렀다. 작은 방울 김향미 역시 1938년 밀양 출신 김영희(본명)다. 그녀는 창원에서 성장, 진영 한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녀를 스카우트한 예술가는 백영호. 1959년 백영호 작곡의 <기타의 슬픔>으로 데뷔했다. 1962년 손인호와 듀엣으로 <울고 간 단심>을 불렀다.
 당시는 미국의 앤드루 시스터즈나 맥과이어 시스터즈를 모델로 한 김시스터즈·이시스터즈·김치켓·정시스터즈 등 걸 그룹이 유행했다. 이 중 트로트풍 걸그룹은 은방울자매가 처음이었다. 은방울자매는 1963년 김영일 작사, 송운선 작곡의 <쌍고동 우는 항구>를 첫 앨범으로 냈다. ‘쌍고동이 울어대면 갈매기도 울었다네/ 마도로스 사랑이란 이별도 많더란다/ 파이프 입에 물고 잘 있거라 손짓하던/ 정든 님도 울었다 네 갈매기도 울었다네.’ 이들은 작은 방울이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민을 가자 멤버가 오숙남으로 교체됐다. 오숙남은 1958년 대히트한 <여인 우정>을 부른 신해성의 부인이다. 이렇게 대중과 소통하던 박애경은 2005년 향년 68세로 작고한다.
 <마포종점>의 근현대사적 키워드는 전차, 마포종점, 영등포, 당인리발전소, 여의도 비행장이다.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해 490여km, 1,200리를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중간에 두고 남과 북으로 마주한 마포와 영등포의 서정을 담은 노래 중 이에 비할 노래가 있으랴. 당시 강북 뭍에서 강남의 뭍을 이어준 수단은 나룻배였다. 마포종점 전차에서 내린 연인은 나룻배를 타고 영등포로 건너가면서 이별을 한다. 노랫말의 모티브는 이렇다. 정두수(1937~2016)의 문화일보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마포종점에 있는 설렁탕집은 예술인 사이에 꽤 유명했다. 어느 날 설렁탕집 주인에게서 마포종점에 살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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