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스님이된 김원주의 사연을 가사로 풀어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수덕사의 여승>은 1966년 29세 송춘희가 부르지만, 사연의 뿌리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식민 통치 방향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로 물꼬를 튼 시기와 연결된다. 그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 사람 중 영민한 인재를 뽑아서 본국으로 유학을 시켰다. 그들 중 대표적인 여성은 윤심덕, 나혜석, 김원주다. 그들은 각각 성악·서양화·영화를 전공한다. 이들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자유연애와 신여성운동을 전개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봉건과 근대 문명의 충돌과 마찰 때문이다. 그중 한 사람, 김원주(일엽스님)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속설(說)이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가사 전문)
그녀는 1928년 예산군 수덕사에 들어가서 5년 뒤, 33세에 만공스님 아래 귀의했다. 43년의 스님 생활, 이후 1971년 12월 8일 76세로 입적했다. 이 사연을 김문웅이 가사로 풀어내고 한동훈이 가락을 얽었다. 송춘희는 1937년 영변에서 태어나 악극단 활동을 하다가 1963년 <삼다도 편지>로 데뷔했고, <수덕사의 여승> 발표 후 여스님들의 항의도 받았었다. 노랫말이 일엽스님을 떠올리게 하고 욕되게 한다는 취지였다. 개신교 집안의 송춘희는 이 노래를 부르고 불교로 개종했다. 일엽(一葉)이란 춘원 이광수가 영화배우 지망생 김원주에게 지어준 예명이다. 한 조각 낙엽.
<수덕사의 여승>의 실제 모델은 김원주었을까? 그녀는 유학 중 일본 은행 총재 아들 오다 세이조(규슈대학 법학과 재학 중)를 사랑하지만 비련으로 끝난다. 아들도 세이조의 친구 집에서 낳았다. 귀국 후 22세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연희전문 교수와 결혼 후 이혼을 하며, 동아일보 기자와 염문을 날리고, 독일 유학을 다녀온 남성을 사모하게 된다. 이처럼 연애와 사랑에 자유혼을 불사르다가,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한다. 일엽이 견성암에서 불의(佛意)에 정진하던 어느 날, 14세 소년이 찾아온다. 김태신, 오다 세이조와 김원주 사이에 태어난 아들. 그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니까 김원주 일엽스님은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고 부르라." 하며 내쫓는다. 이때 김태신을 거두어준 이가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머물고 있던 나혜석(1896-1948, 수원 출생)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 유학을 한 인텔리로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1897~1926, 평양 출생)과 서양화를 공부한 나혜석, 영화를 공부한 김원주. 이들 세 여인은 당시 남존여비(男尊女半)의 봉건사회 관습을 거부하고 불꽃처럼 살며 자유연애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다. 이들 중 김원주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숙제다. 일엽(一葉)은 ‘한국 문단에 하나의 잎이 되라’는 의미로 이광수가 지어준 것. 그녀는 1971년 12월 8일 법랍 43세, 세수 76세로 입적을 했다.
수덕사(修德寺)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많은 이들이 수덕사를 비구니승 사찰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견성암이 비구니 암자인 것이 속세에 그렇게 알려진 것. 사찰의 창건 기록도 숙제다. 백제 위덕왕 때 지명법사 창건 기록, 백제 말 숭제법사 창건 기록 등이 있다. 백제시대 사찰은 흥륜사·왕흥사·칠악사·수덕사·사자사·미륵사·제석정사 등 12개 이름이 전하지만 수덕사만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스님 혜현(570~627)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단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처 정해사,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처 총림(건성암)이 있다.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