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전에서 이별 통첩받는 서글픈 장면 보일 듯”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최초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대중가요 가사도 시(詩)다. 은유보다는 가볍고 서정보다는 빠르게 다가오는 산문 적인 노랫말, 하지만 확연이 다르기도 하다. 시는 침묵해도 되지만 대중가요 가사는 군자와 단어를 조합해서 소리를 얹을 수 있도록 엮어내야 한다. 노랫말이 직유라면 시는 은유가 주류다.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시보다 가슴속을 후벼 파는 직유적 노랫말이 더 숨 가쁠 때가 많다. <배신자> <마지막 잎새> 등의 배호 노래가 그런 류다.
알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가사 전문)
<배신자>가 세상에 나올 때 작곡가 김광빈은 47세, 배호는 27세였다. 2008년 12월1일 새벽, 배호의 음악적 스승이자 외삼촌인 김광빈이 향년 86세로 이승을 등졌다. 우리나라 가요계의 별이 또 하나 진 것이다. 그는 배호의 <두메산골> <굿바이> <녹색의 장미> <밤안개 속의 사랑>, 도성의 <사랑의 배신자>, 강소희의 <이별이 란 가슴 아파> 등 주옥같은 애창곡을 남겼다.
그는 192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해 일제 강점기에 중국 산둥성 제남대학 음악과를 졸업했고, 해방 후 귀국해 우리 대중가요에 평생을 몸담았다. 1950년대 중반 김광빈 악단을 조직해 활동했으며, 이때 배호에게 드럼을 가르치며 음악의 길라잡이가 됐다. 1962~1967년까지 MBC 초대 악단장을 지냈다. 그는 1972년 홍콩으로 진출해 활동하다가 1993년 귀국해 아카데미사운드를 운영했으며, 피아노 연주자였던 부인 안마미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승을 등지기 직전까지는 외조카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배호 콘서트, 배호 가요제 등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사랑 하는 조카이자 음악적 후예였던 배호가 요절한 지 37년 만에 그의 곁으로 갔다.
2004년 <시인세계>에서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을 조사했다. 시인 100명에게 좋아하는 노래 가사 3곡씩 택하게 했으니, 합이 300곡이다. 300곡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괄호 안에 선택한 수를 넣었다. 이 결과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가 1위(16)였으며, 정태춘 작사·작곡·노래 <북한강에서>(10)와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10)이 공동 2위였다. 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 양희은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7)가 3위, 하덕규 작사·작곡, 조성모 노래 <가시나무>(6)와, 하덕규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 <한계령>(6)이 공동 4위였으며, 이하 <사의 찬미>(3) <아침이슬>(3) <황성옛터>(3) 순이었다. 이것은 노래방에서 선곡되는 순위와 상관이 없었단다.
<배신자> 노래는 방금 이별과 절교를 면전에서 통첩(通牒)받고 돌아서는 서글픈 장면이 눈에 보일 듯하다. 눈에 보이는 음악과 관련된 말의 시초는 ‘청관 간주악(請觀 干周樂)’, 주나라 음악을 보여달라고 청한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양공 29(BC 544)년, 오나라 공자 계찰(季札)이 노나라를 방문해 주나라 음악을 연주해(보여)달라고 신청 한 이후 생겨난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품은 상대방의 속내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믿고 당김의 묘미는 사라질 것이지만, 배반의 상처는 줄어들지 않을까? 송나라 때 허비(許裴)라는 시인은 이러한 마음을 간파하는 거울을 고민했다. 임을 향한 일편단심과 언제고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마음을 읽어낼 시(詩)적인 거울을. ‘내 마음은 거울 앞면/언제나 가을 맑은 호수/임의 마음은 거울 뒷면/갈아도 갈아도 분명치 않네.’
가황 배호가 이별과 절교를 통첨하고 돌아서는 사랑의 배신자를 절창 할 당시, 상대편 화자의 손에 독심경(讀心鏡)이 들려 있었다면 쓰라린 이별은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