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정민섭이 노랫말도 짓고 멜로디도 엮은 <곡예사의 첫사랑>은 1978년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빛나는 곡이다. 이때 윤복희는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로 시작하는 노래 <여러분> 으로 1등을 차지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은 생동감 넘치는 다이내믹한 멜로디와 비극적인 가사의 부조화가 매력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시원스런 가창력으로 일대를 풍미했던 박경애, 당시 24세의 그녀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수많은 대중들을 사랑의 곡예사로 만들었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올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 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올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 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희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불러줬지. (가사 전문)
곡예사(曲藝師)는 관객을 대상으로 혼자 또는 단체의 일원으로 신체와 사물을 이용한 각종 요기를 연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학업성보다는 육체적인 숙련성이 필요하므로 어린 나이부터 현장 숙련을 주로 하며, 공중돌기·그네뛰기·줄타기·기구돌리·저글링·검무·말타기·동물묘기·고공묘기(줄 위에서 공중회전, 외발자전거 타기, 오토바이 타기, 그네 옮겨 타기 등)를 연기한다. 이 노래는 이 곡예사의 비련을 음유한 곡이다.
1954년 인천에서 출생한 박경애는 풍성한 성량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특징이며, 1973년 주정이와 함께 듀엣 산이슬을 결성해, <이사 가던 날> <밤비야> 등으로 데뷔 했다. 1977년 이후 솔로로 전향해 독집 앨범을 냈으며, 이듬해 1978년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 출전해 금상을 받았다. 이후 10대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 1980년대 초 결혼하면서 가요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2004년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병세 악화로 6개월 만인 그해 7월 14일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듀엣 산이슬의 주정이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에 3년 남짓 산이슬이라는 여성 듀엣으로 박경애와 같이 활동했다. 주정이는 솔로 데뷔 후 1979년 겨울, 안소영·임동진이 주연한 영화 <애마부인1>의 주제가 <서글픈 사랑>을 불렀다. 그녀는 박경애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 둘은 인천여상 합창단이었고 공부보다 노래를 훨씬 잘했단다. 졸업하면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월 장원을 했고, 연말 대회에서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음반을 냈으며, 그때 팀 이름을 산이슬로 정했다. 팝칼럼니스트 이양일이 지어준 것이다.
이 노래 속의 화자인 곡예사로 편성된 순회공연단을 곡마단(曲馬團)이라고 한다. 이들은 곡예(曲藝)·기술(奇術)·마술(魔術)·노래와 춤 등을 공연하는 흥행 단체로서 서커스단(Circus)이라고도 한다. 서커스는 18세기 중반 영국의 한 승마(乘馬) 곡예사가 빠른 속도로 원형 공연장을 달리는 말 등 위에 선 것에서 유래했단다. 곡마단이 우리나 라에 처음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다. 러시아에서 온 바로프스키(Barovsky) 곡마단이 첫째다. 유럽·일본 등에서 공연을 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여러 마리의 말들을 이용한 곡마술과 공중그네 기예가 유명했단다. 순종 임금(재위 1907-1910)도 영국 대사(맥도널드)를 접견한 뒤에 영화당에서 귀족들이 배석한 가운데 곡마회 공연을 관람했단다. 바로프스키 곡마단은 1910년, 1919년 두 번 우리나라에 왔고, 조선인 극장 단성사에서 공연을 했으며, 공연 종목은 무언극·줄타기·그네뛰기·마술(馬術) 등이었단다.
1920년대 중반에는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김문필과 천도교의 후원을 받은 박창순이 조선인 마술사로 순회공연을 했다. 1950~1960년대는 곡마단이 흥행했다. 해방 정국과 6·25전쟁의 공허감을 채워준 감성 문화예술의 역할로 보아도 되리라. 그 대표 격이 동춘서커스단. 이들은 단원이 200명이 넘었단다. 이와 유사한 곡마단이 전국에 20여 개가 존재하다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쇠락했다. 당시 유명세를 탄 곡예사들은 이동안·김관보·김인호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박세환 단장의 동춘서커스단이 남아 있지만 단원들은 외국 출신 곡예사가 많다.
역사상 최초로 알려진 서커스 공연은 기원전 1세기경 줄리어스 시저(BC 100~44) 통치 시절 로마의 키르쿠스 막시무스라는 전차 경기장에서 열렸다. 15만 석의 거대한 구조물은 훗날 그리스 타원형 경기장(hippodrome)의 모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