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반항 억눌린 뒷모습이 노랫말과 겹쳐 있는 듯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목로주점>은 군사정권의 특허 브랜드 같은 3선개헌(1969)과 유신헌법(1972), 긴급조치(1974~1975)와 서울의 봄(1980)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암울한 시대의 터널 천창에 매달린 곡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궁정동 안가 사건 후, 1980년 서울의 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절기는 봄이었는데, 세상은 봄이 아니었다. 그 삭막하던 시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거리를 헤매었다. 더러는 더벅머리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다녀서 뒷모습을 보고는 남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골목길 안에는 마알간 투명 유리가 끼워진 네모난 창틀 속에서 노란색 양은 주전자를 앞에 놓은 젊은이들이 두런두런 세속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울분의 기포를 부글부글 피워 올렸다. 세류 속 허물들을 질겅질겅 깨씹어 삼켰다. 그 어수록한 공간 안에는 여지없이 <목로주점>이 장단이라도 맞추듯이 굴렁거렸다. 1981년 이러한 시대 이념과 세속의 감성을 이연실이 싱어송라이팅한 곡이 바로 이 노래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이 되살아난 것이었나. 이 곡은 난세분(亂世憤), 혼란한 세상에는 분통 터지는 노래가 불린다는 말의 실현이다.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지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쳐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 엘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마/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심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탄다. (가사 전문)
목로(木墟)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해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床)이다. 비슷한 말로 술청과 주로(酒壚)가 있다. 이 곡을 부르면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무교동 낙지골목이 생각난다. 구릿하고 매캐뜸뜸한 냄새가 오히려 정감 넘치는 신길동 홍어골목이면 어떻고, 고소비릿매캐한 냄새로 발길을 끄는 공덕동 튀김골목은 또 어떠랴. 또 신촌 뒷골목 막걸리 주점이 떠오르고, 홍대 거리의 발랄함이 연상되고, 종로2가 피맛골(避馬路) 옛 골목을 걷는 듯하다. 이 골목들은 세칭 7080 세대들의 추억과 기억을 머금은 서울 안의 후미진 뒤뜰이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그 시절 억눌린 감성을 발산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득실거리며 오가던 청춘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청바지에 긴 머리, 짧게 걸친 아랫도리의 반항 같던 자유혼의 발산, 그들의 억눌린 뒷모습이 노랫말과 가락으로 겹쳐진다.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청하던 청춘들.
당시 31세 이연실은 1950년 군산에서 4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군산대 교수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다. 1970년 가수팔도대항전에서 전라북도 대표로 출전해 입선했으며, 대학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로 소공동 조선호텔 뒤 라이브클럽 포시즌에서 노래를 했다. 이때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배호의 <누가 울어> <안녕>, 박경희의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작사한 전우(1936~1978, 본명 전승우)의 눈에 띄어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71년 제5회 MBC <팝콘서트>에서 자작곡 <조용한 여자>로 데뷔 리사이틀을 갖는다. 대학생 신분 이던 그녀는 음악과 인생을 체험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대구에서 다방 아가씨 생활까지 했고, 학교는 중도 하차했다.
1975년 12월 11일 그녀는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정훈희·이수미·이현과 함께 자수 한다. 여기서 사안이 경미하다고 해서 훈방된다. 이후 1981년 5월 그의 가수인생 최대 히트 곡인 <목로주점>을 발표했다. 독집 음반이다. 그녀는 1970년대에 양희은·박인회·은희와 함께 여성 포크가수 1세대다.
<목로주점> 가사에는 생소한 두 단어가 있다. 목로(木爐)와 백열등(白熱燈)이다. 목로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해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床)이고, 30촉 백열등은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역사를 같이한다. 백열등 아래에서 어머니들은 필라멘트가 떨어져 불빛을 발하지 않는 백열전구를 구멍 난 양말 안에 넣고 해어진 곳을 꿰맸다. 또 하나는 시장 골목 안 여인숙 풍경이다. 당시 백열등은 대개 옆방과의 경계벽 꼭대기를 뚫어놓은 공간에 위치시켜서 전구 하나로 두 방을 밝히는 방식을 사용했다. 당시 60촉·100촉 등의 전구가 있었음에도 침침한 조명도의 30촉 백열등이 각광받은 이유는 전력 소모량과 필라멘트의 수명이 길었던 때문이었다.
이러한 백열전구는 이제 지구환경을 위해 세계적으로 퇴출의 대상이 되고 있다.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으로 암흑의 지구를 밝혀온 백열등이 지구환경을 위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3년을 시한으로 백열전구를 민간과 공공 부문에서 모두 퇴출했다. 발명왕 토머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미국의 발명가)의 발광체 발명품이 134년 만에 문화적인 운명을 다한 것이다. 유행가는 그 노래 탄생의 모티브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도 대중들의 입을 통해 세상이라는 강 물결을 따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