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9.29 (화)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www.chihak.co.kr/news/20557
발행일: 2025/10/17  치학신문
유차영의 아랑가 ㉜
1973년 이별 : 길옥윤/길옥윤/패티김

길옥윤과의 헤어짐 고별공연 등 패티김의 인생 노래

 

 


 유 차 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경기대학교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책임교수


 대중가요 유행가스토리텔러

 

 

 예술가들의 이별은 다른가. 패티김과 길옥윤은 1966년에 결혼을 했다가 1972년에 각자의 길을 간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3년 이 노래 <이별>을 부른다. 전 남편 길옥윤이 지은 곡을 전 부인 패티김이 불렀다. 패티의 노래 중 이처럼 허스키 보이스로 부른 노래도 드물다. 사랑의 맹세를 남기고 떠나가는 길 삿갓에 보내는 절창이었다고 함이 적절한 표현이리라.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때로는 보고파 지겠지 둥근 달을 쳐다보면은/ 그날 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할 거야//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 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잊을 수는 없을 거야. (가사 전문)


 1965년 길옥윤이 일본에서 돌아오던 해, 미국에서 4년간의 가수 생활을 하던 패티김도 귀국을 한다. 둘의 동시 귀국은 우연이 아니었다. 패티김이 미국에 있고, 길옥윤은 일본에 있을 때 길옥윤은 <4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지어서 어쿠스틱 기타를 퉁기면서 국제전화로 패티김에게 들려주었단다. 이렇게 가수와 연주자는 서로의 예술적인 끼에 홀리고 홀린다. 이어 둘은 사랑에 빠지고 1966년 결혼을 하지만 7년 뒤인 1972년에 이혼을 한다. 길옥윤의 방랑풍 생활이 이유였단다. 이 노래는 예술가들의 이별도 통속적임을 말해준다. 어쩌다 생각이 나고, 잊을 수 없는 그런 이별, 조물주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내려준 한 단어를 꼬집으면, 바로 이별(離別)이다. 그것이 생이별(生離別)이건 영이별(永離別)이건 간에.
 당시 33세였던 패티김(본명 김혜자)은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해 중앙여고를 졸업 하고, 1958년 미군부대 무대(베니김 쇼)에서 가수를 시작했다. 2018년을 기준으로 60년이다. 김혜자가 패티김으로 태어난 장소는 명동, 1958년 봄날, 스물한 살 혜자는 일 자리를 찾으며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를 동경하면서, "너 혜자 아니냐?" 작은오빠 절친 곽준용. "너 노래 한번 해보지 않을래?" 며칠 뒤, 곽준용은 김혜자를 화양홍업 전무 베니김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니는 이해연<단장의 미아리고개>가수의 남편 김영순, 그는 서울대 치대 출신, 당시 미8군 무대 트럼펫 연주자였다. 당시 미8군무대 오디션은 A·B·C 등급을 받아야 합격, 패티는 린다김이라는 예명으로 (Till)과 라는 일일 음악쇼를 진행했다. 우리 방송사에서 가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매일 노래하는 무대를 가진 가수는 그녀가 유일하다.
 1960년대 여자 가수 양대 산맥은 이미자와 패티김이었다. 이미자 뒤에는 박춘석이 있고, 패티김 뒤에는 길옥윤이 있었다. 길옥윤은 패티김보다 11살 위였고, 박춘석은 8살 위였다. 사실 박춘석이 길옥윤보다 패티김과의 인연은 더 빠르다. 1962년 패티가 오산 미군무대에서 노래할 때, 박춘석이 찾아가서 <초우>와 번안곡 <파드레> <틸> <사랑의 맹세>를 줬고, 예술적 프러포즈를 한 것인데, 이후 얼마 안 돼서 패티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65년 미국서 돌아온 패티는 1년 후 길옥윤과 결혼을 한다. 이후 평생을 총각으로 살다가 간 박춘석은 '애인을 길옥윤에게 빼앗긴 기분으로 살았을 거라 는 것'이 훗날 패티의 소회다. 이때 박춘석은 나훈아·남진과 콤비를 이루어 전통가요 쪽에 몰두했고, 길옥윤과 이혼 후 패티는 다시 박춘석과 노래로 만난다. 1970년대 중반, 그때 나온 노래들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새> 등이다. 이후 패티김의 이태리 남편(아바라도 게디니)은 패티에게 청혼할 때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면 아이 몸무게만 한 보석(다이아몬드)을 선물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인가, 둘은 결혼을 했고, 딸 카밀라 게디니를 낳았다.
 그녀는 2013년 패티김 이별콘서트를 특별 기획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가요계 인생 역정을 총정리했다. 전국을 16회로 순회공연하며, 2013년 봄을 은퇴 기점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공연은 노래와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음악 토크쇼였다. 그녀의 은퇴공연 제목 '이별(離別)'은 조용필이 붙여준 것이며, 공연 도입부에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낭송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혼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별>은 패티김의 인생 노래다. 그녀는 1956년 중앙여고 졸업반 때 국무총리 배(盃) 판소리 경연대회에 처음으로 나가서 노래를 불렀고, 2013년 10월 26일 이 노래 곡목을 딴 고별공연 '이별(離別)'을 끝으로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관련기사
유차영의 아랑가 ㉛  치학신문 (09.26)
유차영의 아랑가 ㉚  치학신문 (09.12)
유차영의 아랑가 ㉙  치학신문 (08.29)
유차영의 아랑가 ㉘  치학신문 (08.14)
유차영의 아랑가 ㉗  치학신문 (07.25)
유차영의 아랑가 ㉖  치학신문 (07.11)
유차영의 아랑가 ㉕  치학신문 (06.28)
유차영의 아랑가 ㉔  치학신문 (06.13)
유차영의 아랑가 ㉓  치학신문 (05.30)
유차영의 아랑가 ㉒  치학신문 (05.16)
유차영의 아랑가 <21>  치학신문 (05.01)
유차영의 아랑가 <20>  치학신문 (04.17)
유차영의 아랑가 ⑲  치학신문 (03.28)
유차영의 아랑가 ⑱  치학신문 (03.14)
유차영의 아랑가 <17>  치학신문 (02.28)
유차영의 아랑가 ⑯  치학신문 (02.14)
유차영의 아랑가 ⑮  치학신문 (01.25)
유차영의 아랑가 ⑭  치학신문 (12.29)
유차영의 아랑가 <13>  치학신문 (12.13)
유차영의 아랑가 ⑫  치학신문 (11.29)
유차영의 아랑가 ⑪  치학신문 (11.15)
유차영의 아랑가 <10>  치학신문 (09.27)
유차영의 아랑가 <9>  치학신문 (09.12)
유차영의 아랑가 <8>  치학신문 (08.29)
유차영의 아랑가 ⑦  치학신문 (08.14)
유차영의 아랑가 ⑥  치학신문 (05.30)
유차영의 아랑가 ⑤  치학신문 (05.16)
유차영의 아랑가 <4>  치학신문 (05.01)
유차영의 아랑가 <3>  치학신문 (04.12)
유차영의 아랑가 ②  치학신문 (03.29)
유차영의 아랑가 ①  치학신문 (03.14)
유차영의 아랑가 ㉝  치학신문 (11.14)
유차영의 아랑가 ㉞  치학신문 (11.28)
유차영의 아랑가 ㉟  치학신문 (12.13)
유차영의 아랑가 ㊱  치학신문 (01.29)
유차영의 아랑가 ㊲  치학신문 (02.12)
유차영의 아랑가 ㊳  치학신문 (02.26)
유차영의 아랑가 ㊵  치학신문 (03.25)
유차영의 아랑가 ㊶  치학신문 (04.30)
유차영의 아랑가 ㊷  치학신문 (05.14)
유차영의 아랑가 ㊸  치학신문 (05.28)
유차영의 아랑가 ㊹  치학신문 (06.12)
유차영의 아랑가 ㊺  치학신문 (06.26)
유차영의 아랑가 ㊻  치학신문 (07.15)
유차영의 아랑가 ㊼  치학신문 (07.30)
유차영의 아랑가 ㊽  치학신문 (08.15)
유차영의 아랑가 ㊾  치학신문 (08.28)
유차영의 아랑가 ㊿  치학신문 (09.29)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오스템 배너
 
  l   신문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회사명 : 주식회사 치학신문  |  07225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18길 5
광고접수 : 02-2632-6858(대표)  |  편집국 : 02-2679-9389  |  출판국 : 02-2633-9389, 02-2679-6820  |  팩스 : 02-2671-9389
제호 : 치학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6464  |  등록일 : 1987년 08월 07일
명예회장 : 임채균, 이재윤  |  회장 : 김홍기  |  발행인 : 장백용  |  편집인 : 심영섭
치학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치학신문은 신문윤리강령 및 주간신문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7 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chihak@daum.net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