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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1/15  치학신문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①

 

 


 기 태 석


 대전 기태석치과 원장

 

 

 

 

 


 1. 금강


 필자는 대학 졸업 이후, 백제 터인 금강변으로 40여 년 전 이주해 살아오면서도 백제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것도, 관심도 없이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나의 삶의 터전인 백제 터에 대한 궁금증으로 공주, 부여, 익산 등을 찾다 보니, 패망해서 사라져버렸다던 백제에 관한 진실이 최근에 새롭게 밝혀지면서 역사가 다시 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특히 필자가 받았던 교육으로는 백제의 역사는 승자인 통일신라에 의해 완전히 묻혀 버렸다고 배워왔고 사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1965년도 익산 왕궁리5층석탑의 사리기 발견을 시작으로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익산 왕궁터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왕흥사지 발굴, 나성 등 잇따른 백제 유적지, 유물이 발굴되다가 최근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 보수하다 나온 사리기에서 무왕의 부인이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명문이 발견됨으로써 야기된 선화공주 진위논란으로 2017년에는 쌍릉을 재조사하는 단계로까지 백제 역사가 재조명되면서 자못 결과가 궁금해지고 있다. 필자는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개업의로서 사학이나 고고학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아니다. 깊은 것은 알 수 없으나,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과소 평가된 백제 유적지나 역사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일찍이 고려 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문화를“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않았다. 즉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고 하였다. 이는 백제의 문화는 명품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백제의 문화가 명품이 된 이유를 사학자들은 “이런 명품들은 백제인들의 느긋한 심성에서 나왔는데 이는 풍요로움에서 비롯됐다. 금강변의 넓은 들판과 금강의 풍부한 수량은 이곳 사람들의 배를 불려 주었고, 이 풍요에서 나온 풍류와 멋을 아는 백제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라고 하였다.
 사진은 한성에서 고구려에 쫓겨 새로 도읍한 웅진(공주)에서부터 사비(부여), 그리고 마지막 천도를 생각했던 익산까지, 이들을 한결같이 품고 있었던 것이 금강이다. 그래서 나는 백제 문화를 논하기 전에 백제의 문화를 잉태하고 출산한 모태가 금강이라는 생각으로 아름다운 비단강을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백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대전 사람에게는 청벽(靑壁)이라고 알려진 창벽(蒼壁;둘 다 푸른 절벽), 그 위에서 공주로 들어가는 금강을 내려다본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신공주 대교이고 그 너머로 공산성(웅진 백제 왕성)이 있다. 가까이 보이는 다리는 대전에서 공주로 들어가는 청벽대교다. 창벽은 계룡산 한줄기가 금강을 향해 달려오다 멈추고 우뚝 솟은 50m 높이의 절벽을 말하는데 선조들은 창벽부터 공산성까지 배를 띄우며 놀았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유근이 충청감사로 와서 공산성 공북루에 올라 시 한 수를 지었다. ‘소동파는 적벽강에서 놀았으나 나는 창벽에서 놀고 유양은 남루에 올랐지만 나는 지금 북루(공북루)에 올랐노라.(택리지)’라고 읊은 창벽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나라 6대 하천인 금강은 남한에서는 한강,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전라북도 장수에서 발원하여 보기 드물게 북쪽으로 흐르다가 충청북도 옥천, 영동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충청남도 신탄진, 부강에 이르러 남서 방향으로 흐르다, 공주에서 다시 한번 남서로 방향을 틀고 부여, 익산 등 넓은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최근에 사진에서 보이는 곳에서 불과 2~3km 상류에 세종특별자치시가 도읍하면서, 1400여 년 만에 대한민국 제2의 수도를 품고, 사라졌던 백제의 꿈이 금강가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창벽 위에서 바라본 금강錦江(비단같이 아름다운 강)은 석양이 질 무렵이면 넓은 들판 위에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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