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사지 10층 석탑의 끝나지 않은 수난사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적이 있다(2022년 5월). 참신하고 멋진 퍼포먼스였다. 우리의 고유문화 수준을 전 세계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필자도 은근히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복도에 전통 의장대의 화려한 도열 뒤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현수막으로 가림막이 내려져 있었다. 필자는 그 뒤에 있는 자랑스러운 국보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위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호상으로 가렸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과거 아픈 사연을 가진 유물이었기에 또 한 번의 상처를 받는 것 같아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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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정상 뒤에 가림막이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가리고 있다. 의미 없는 가림막 대신 경천사지 10층석탑이 배경이 되었다면 우리 문화 수준을 알 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었는데 안타깝다. |
일제가 우리 문화재에 눈독을 들인 것 중에 고려시대 석탑도 있었는데, 스님도 없고 건물도 사라진 개성 인근 폐사지에 있던 높이 13.5m의 거대한 대리석 위에 섬세한 부조를 새긴 경천사지 10층 석탑이었다. 원나라 양식을 도입해 1348년 충목왕 때 만든 탑이었다.
철저한 계획 범죄
일본 정부의 다나카 궁내 대신은 1902년 세키노 교수의 ‘조선고적도보’라는 조사 보고서에서 이 탑을 보고 범행 계획을 세웠고, 1906년 12월에 황태자 혼례식 특사로 한국을 방문할 때 범행을 감행했다. 고종황제가 기념으로 하사했다고 속이고, 무장한 일본 경찰을 앞세워 경천사지로 가서 인근 주민의 저항과 관할 군수의 항거를 묵살하면서 석탑을 여러 조각으로 분해, 해체하고, 포장해서 수십 대의 달구지로 야밤에 개성역으로 빼돌렸다가 기차로 인천까지 운반했고 다시 배에 옮겨 싣고 일본 자기 집 앞마당으로 반출 범행을 성공시켰다.
끈질긴 저항
그러나 금세 소문이 났고, 데라우치 총독이 그 행위는 불법이고 유물을 원위치에 돌려놓으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다나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 버틴다. 결국 데라우치는 재임 기간인 1915년까지 반환시키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으나 그가 본국 총리대신에 부임하자 다나카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후임으로 총독이 된 하세가와 총독은 1918년 이 탑에 대한 조사 보고를 받아보고 고종이 다나카에게 하사했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조작이었음이 밝혀진다. 이후 다나카는 마침내 여론에 굴복해서 서울로 탑을 반환하게 된다.
복원, 그리고 또 한 번의 상처
그러나 도착한 분해된 탑을 보니 당시로서는 복원이 안 될 정도로 파괴가 심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40여 년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고, 1960년에야 복원이 되면서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새로 지은 국립중앙박물관 1층 복도 끝을 장식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유물이 되었다. 그런 아픈 과거를 가진 유물이 전 세계인에게 당당하게 소개되어야 할 때, 왜 의미 없는 가림막으로 가려져야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또 한 번 유물에게 아픔을 준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지만, 일제에 의한 약탈이 없었다면 지금은 북녘땅에 있어 영영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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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천사지 10층 석탑. 국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