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대향로(국보) 1.발굴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1993년 12월 당시 국립부여박물관 신광섭 관장(부여 출신)은 인근에 있던 능산리 고분을 찾는 방문객이 늘자, 그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 설치를 위한 공사가 결정되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본격 발굴에 앞서 표본으로 발굴하는 방식인 트렌치를 시도해 봤다. 그 결과 기와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그는 간곡히 발굴조사를 요청하자 문화재위원들은 마지 못한 허가를 내주었고 이후 1m도 안 되는 물구덩이에서 뚜껑과 몸통이 분리된 채 이 향로가 발견된 것이다. 12월 22일 밤에 전화를 받은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은 장관에게 보고하고 언론기관에 알려 다음 날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오고 이듬해 4월에는 국립박물관 개관 이래 최초로 대형 향로 하나만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12일 동안 6만 8천 명이 찾아올 정도였다. (윤재환‘신 부여팔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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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으로 덮힌 웅덩이 속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 (사진 나무위키 참조) |
1993년 12월 22일 저녁 무렵, 길이 120cm, 폭 70cm, 깊이 70cm 정도의 나무 수조 물웅덩이에서 출토되었는데, 1,300여년 세월에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은 진흙과 범벅인 채 산소가 차단되었기에 부식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 수조 바닥에 기와 조각이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향로를 놓은 것과 뚜껑과 몸통 부근에서 섬유질 같은 것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향로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급히 숨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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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도 어두운 전시실에 외로이 홀로 좁은 방에 갇혀 있다가 최근에 가 보니 넓고 비교적 밝은 전시실로 자리를 옮겼다. |
기록이 없어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고 갖은 시련을 이겨내면서 꽃피운 불굴의 백제 문화를 상징하는 금속공예 작품으로 제작 연도를 6~7세기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연꽃은 물론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과 신선들이 조각되어 있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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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 표면에 연꽃, 신선, 상상의 동물 등과 조각되어 있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
이 유물의 발굴로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금속공예의 정수를 또 한 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크기와 예술성으로 보아 처음에는 중국에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으나, 발견 장소가 이런 공예품을 제작했던 공방지임이 밝혀짐으로써 그런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다고 한다. 추후 발굴조사로 이곳이 왕실의 원찰로 밝혀짐으로써 절에 딸린 공방에서 높은 공예 기술을 가진 장인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