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사지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능산리사지는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조성한 왕실 사찰의 절터로 나성과 백제왕릉원 사이의 골짜기에 있다. 1992년 국립부여박물관의 발굴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국보)가 출토되었고, 목탑지 하부에서 석조사리감(국보)이 발견되었는데 여기 명문을 통해 백제 창왕 13년(567)에 왕실 주도하에 사찰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백제금동대향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한 와전류, 토기류, 금속류, 목제류 등 다수의 유물이 나왔는데, 특히 30여 점의 목간은 현재까지 백제유적 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이고 이를 통하여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곳은 잔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의 명확한 시대 편년이 가능해서 삼국시대 건축은 물론 동북아시아 건축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국보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백제의 사상과 조형 예술, 그리고 금속공예 기술을 살필 수 있었고‘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의 명문을 통해서는 567년에 성왕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간된 왕실의 기원 사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660년 백제의 멸망과 함께 이 사찰이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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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산리사지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된 일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었고 사역 서쪽에서 경내로 진입하는 도로 유구와 다양한 수로, 집수조, 우물 등 치수시설도 확인되었다. 또한 사진 오른쪽은 선왕들을 모신 죽음의 공간이고 왼쪽으로 나성의 안쪽은 산사람들의 공간인 도성으로 그 가운데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사찰을 조성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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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문지(앞)와 뒤에 목탑지 기단부가 보인다. 목탑지는 금당과는 7.87m 떨어져 있었고, 기단은 정사각형으로 한 변이 하층 11.73m 상층 10.30m이다. 상층기단은 1.1~1.3m 크기의 장대석으로 하층기단에 약 70cm 정도 들여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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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탑 중심부 지표 아래에서 심초석이 드러났는데, 지름 40~50cm의 느티나무 심주 일부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감에는 위덕왕 13년에 공주가 사리를 공양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발견되어서 이 사찰의 성격을 알려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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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터는 목탑터와 마찬가지로 이중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그 뒤에 있는 강당터는 길이가 37m가 되는 거대한 규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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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방시설이 두 군데서 발견되었는데 제3건물터의 중앙 방의 목곽수조 안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사진은 발굴 당시 박물관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