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흥사지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왕흥사는 백제 위덕왕(창왕)이 577년에 세운 백제 왕실 사찰인데, 호화로웠던 사찰 전각 모습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부소산성의 낙화암 건너편 백마강가에 터만 쓸쓸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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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흥사지 금당지에서 멀리 보이는 산이 부소산이다. 나무들 너머에는 백마강이 흐르고 있다. 갈 때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런 호젓한 곳에서 한동안 멍때리는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도 고적답사 여행의 별미이다. |
그러나 1934년 ‘왕흥王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삼국사기’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왕흥사 터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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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 조각에 왕흥이란 글자가 발견되어 이곳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흥사가 있었던 터임을 알 수 있었다. |
또한 2000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2000~2015년까지 총 15차례)에서 이곳의 목탑 터에서 부처의 사리를 담는 사리기(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공양물)가 발견되었는데(2007년) 사리기에 새겨진 글로 577년 정유년 백제 위덕왕(창왕, 544~598 재위)이 죽은 왕자를 위해 왕흥사를 창건한 사실(위덕왕 24년 577년)이 밝혀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600년에 무왕(600~641 재위)이 왕흥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유물의 발견으로 그 기록은 무왕이 사역을 정비하고 왕흥사를 백제의 호국사찰로 키워나갔다는 의미였다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왕들이 자주 백마강을 건너와 왕흥사에 들러 백제의 안녕과 번영을 기도를 드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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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문이 새겨져 있는 왕흥사지 사리기 |
발굴조사 결과, 왕흥사는 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 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가람 배치를 하고 있고, 탑과 금당의 양옆에는 회랑과 부속 건물을 세웠고, 장식 기와와 벽돌로 화려하게 꾸몄던 사찰인 것으로 밝혀졌다. 왕흥사지 내에서 백제 가마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찰에서 자체적으로 기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데 특히 2013년에 승방으로 보이는 건물터에서 발견된 치미(지붕 용마루의 양끝에 높게 부착하는 장식기와)는 왕흥사지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알려진 고대 치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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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흥사지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