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700년 백제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부소산성 일대는 당시에는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이라고 불렀다. 부소는 백제시대 말로 소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부소산성은 사비 백제시대의 중심을 이루는 산성으로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 시설인데, 성안에 궁궐이 있었던 공주 공산성과 달리 수도의 배후산성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도읍이 산성 앞에 있어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다가, 유사시에는 도성의 방어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서쪽으로는 백마강을 끼고 부여의 가장 북쪽에 있는 표고 106m의 부소산 정상에 축조되었다. 산성 내부에서 많은 수의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슬픈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도 부소산성 안에 있다. 백제시대 산성 전체 길이는 외곽선을 기준으로 2,495m 바닥의 너비는 5~6m, 높이는 3m 내외이다. 사비 수도의 중요시설은 산성 바로 앞에 있는 관북리 유적에서 발견되므로 부소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때도 관북리 유적과 함께 지정되었다.
부소산성은 백제부터 조선까지 이어온 복합산성
백제가 사비로 옮긴 백제 성왕(538년)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소산성은 군창지 주변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머리띠를 두른 듯 성벽을 침)과 사자루 주변 테뫼식 산성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주변에 성벽을 침)으로 이루어져 있는 복합식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 포곡식 산성은 2,496m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사자루 테뫼식 산성은 410m, 반월루 테뫼식 산성은 1,420m이고 조선시대 군창지 퇴뫼식 산성은 760m이다. 축성은 백제시대 사비 천도(538) 이전이며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이었다.
도성의 후원과 방어 거점의 역할
포곡식 산성만이 백제시대의 것이고 나머지 테뫼식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으로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사시에는 산성으로 들어가 도성의 방어 거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부소산성에 남아있는 사비기의 성벽 구간에서 한성기 이래로 백제 특유의 판축 구조가 확인되었다.
부여 시가지 전체를 조망하는 곳에 있는 부소산성은 바로 앞에 있는 관북리 왕궁지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와 연결되어 있으며 백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태자골 숲길은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될 만큼 옛날 왕궁의 정원처럼 아름다워 사계절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다. 산성 내에는 낙화암을 포함하여 수많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고 영일루, 사자루, 반월루와 같은 정자와 건물터, 고란사와 궁녀사, 그리고 서복사지 터 등의 사찰 관련 시설과 군창지 등 수많은 유적은 1,500년 역사를 넘나들며 선조들의 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
| 백마강에서 바라본 낙화암(홍보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