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루(迎日樓)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삼충사를 나와 영일루로 향하는 길은 약간 오르막이어서 지루할 수 있으나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과 곳곳에 나오는 테뫼식 산성길(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머리띠식 산성)은 흙으로 다진 토성이어서 포근한 어머니의 품 같아서 항상 정겨운 길이 된다.
오르다 보면 마루턱에 오롯이 서 있는 2층 누각이 보이는데 이곳이 영일루이다.
이곳은 백제시대에 영일대가 있었던 곳으로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 부여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 관아 문을 옮겨와 세운 것으로 이름을 영일루라 하였다.
누각을 옮겨 세울 때 백제의 기와 파편이 출토되기도 했고, 사비도성 전역을 볼 수 있고 지금은 메워졌지만 달을 비추던 월함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청마산성과 나성을 살필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부소산 서북쪽 봉우리에 달이 지는 모습을 보던 송월대와 동남쪽 봉우리에서 해를 맞이하던 영일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백제인의 서정적인 멋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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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마루 안에 걸린 인빈출일(寅賓出日) 현판은 ‘삼가 공경하면서 뜨는 해를 맞이한다.’라는 의미이고 서경에 나오는 문구인데 서체가 주는 느낌이 매우 역동적이다. 청양사람 정향(靜香) 조병호(1914-2005)의 글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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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각 외부에 걸린 현판은 해를 맞이한다는 영일루(迎日樓)라는 글씨인데 부여군 홍산면 출신의 원곡(原谷) 김기승(1909~2000)선생이 썼다. |
영일루에 오를 때마다 남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많은 문헌이나 사료에 보면 영일루에 올라서 계룡산 연천봉에서 뜨는 해를 맞이한다고 되어있는데 2층 누각에 올라가 보면 나무에 가려 절대로 계룡산을 조망할 수 없다.
올바른 문화재 보존정책이라면 문화재의 이름에 걸맞게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만 가지치기를 해주어서 여기를 오르는 사람들에게 계룡산 너머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기쁨을 선사해준다면 그것이 진정한 문화재 보존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