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야외 전시장) 2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동사리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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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리석탑 |
고려의 중요한 교통로인 금강 인근인 부여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것인데 고려 왕실의 원찰인 개태사로 가는 길목에 있어 고려 현종 때 정림사가 중수될 때 동사리사지도 주요 거점이 되어 석탑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71년 부여 쌍북리로 옮겼다가 1993년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얹은 통일신라 석탑 양식으로 아래층 기단 네 면에 각각 3개씩의 안상眼象(코끼리 눈 무늬)을 새겨놓았다. 위층의 기단 덮개돌 윗면에 연꽃무늬를 새긴 탑신 받침이 있고 네 모서리에는 돌출된 꽃장식이 있다. 탑신은 1층 탑신에 비해 2층 탑신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1층 탑신에는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감실을 만들어 놓았다. 이 탑은 연꽃무늬 탑신 받침과 2층 탑신 이상의 급격한 축소, 탑신에 있는 감실 등 고려 석탑의 특징으로 조성 시기를 고려 전기(11C 경)로 추정한다.
비석받침(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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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석받침(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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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석받침(귀부) |
충남 서천에서 발견된 11~13C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받침(귀부)인데 거북이 머리를 돌리고 입을 벌려 치아가 보이고 날개까지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귀부에 이런 해학을 가미했던 선조들의 예술적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참고로 귀부를 감상할 때 거북의 꼬리 부분을 관찰하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다. 석공들은 꼬리를 말아 올리거나 옆으로 돌리는 등 많은 변화를 주면서 보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없애주고 있다.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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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 |
고려시대에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을 새긴 비인데, 부여 임천면 가신리 보광사지에 있던 것을 1963년 이곳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지금은 비신만 남아 있다. 비문의 앞면은 건립 당시인 고려 공민왕 7년 1358년에, 뒷면은 조선 영조 26년 1750년에 새겼다. 비문에 의하면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하여 선원사에서 뜻을 펴오다가 공민왕 원년에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비나 탑을 원치 않는다고 당부하여 바로 만들지 못하다가 6년 후에 비가 세워졌다. 이 비는 고려 후기의 간소화된 석비 양식을 보여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부여박물관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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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박물관 석조여래입상 |
국립부여박물관 뒷산인 금성산의 천왕사로 알려진 절터 부근에서 1933년에 발견된 불상이다. 4등신에 가깝게 얼굴은 크고 비만한데 몸통은 밋밋하게 표현하는 등 신라에 비해 전체적인 조형미가 떨어지는 모습이다. 왼손은 위로 올리고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려 손바닥이 보이게 하였다. (시무외인과 여원인) 특히 몸과 머리의 폭이 비슷한 돌기둥 형태를 보이는데,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은진미륵), 당진 안국사지 석불입상,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 등 고려 전기 충청, 전라지역에서 유행하였던 석주형 석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 유물들은 비록 백제 당시 유물은 아니지만 백제 후예들이 살던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물로 백제의 냄새가 흠씬 묻어있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