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성흥)산성과 대조사 <1>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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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위성 사진으로 본 가림성 위치(화살표)인데 위쪽 왕궁이 있는 부소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휘도는 금강을 따라 들어오는 외적을 경계하기 쉬운 곳에 만든 전략적 요충지였다. |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공주)과 사비성(부여)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가 내려다보이는 성흥산에 돌로 쌓은 석성이다. 성흥산성(가림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진 테뫼식 산성(산꼭대기에 테두리를 두르듯 쌓은 산성)으로 내성의 길이는 약 1,342m, 외성은 약 724m 정도이다. 산 정상에서는 금강이 한눈에 보인다. 동성왕 23년(501년)에 위사좌평 백가가 쌓았다고 전하는데 당시 지명이 가림군이라 가림성이라고 불렀다. 백가는 동성왕이 이곳으로 보낸 것에 불만을 품고 동성왕을 죽이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령왕이 평정하고 백가를 죽여 강물에 던졌다고 하는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백제 최고 관직인 위사좌평에게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한다. 백제가 멸망 후 부흥운동 때에도 가림성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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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을 오르다 남문 터 입구에서 보이는 성흥산성 모습이다. 석성은 오래된 석축과 새로 쌓은 돌이 섞여있다. |
대조사와 서동설화
성흥산 중턱에 있는 대조사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서동(무왕)이 대조사 미륵불에게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간절히 빌었더니 관음보살이 나타나 느티나무 가지를 서동에게 주었고, 이에 용기 내서 서라벌로 떠나 결국 선화공주의 사랑을 얻었다. 후대에 그들의 사랑을 기리고자 성흥산성에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의 느티나무가 되었고 잎사귀가 떨어지고 난 겨울이면 나뭇가지가 하트 모양을 한다고 해서 사랑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적은 현수막이 ‘대조사 미륵보살입상’ 곁에 걸려 있다. 그 시절 하트라는 것은 없었고, 무왕과 고려시대 만든 석불도 앞뒤가 안 맞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설화 중 하나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성흥산성 ‘사랑나무’
성흥산성에 오르려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도,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난 ‘사랑나무’ 덕분이다. 사랑 나무는 공식적으론‘부여 가림성 느티나무’인데 천연기념물로써 높이 22m, 둘레 5.4m이며, 산성 남문지 입구에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다. 가지가 하트처럼 보인다고 일명 ‘사랑나무’로 불리며 가림성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특한 뿌리 모양(판근)과 아름다운 나무 모양은 바람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오래전부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 알려지다가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많은 연인의 ‘인생 샷’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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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나무’는 가을에 잎이 떨어지고 나면 오른쪽 가지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사랑나무’로 불리고 있다. 많은 연인, 부부들이 찾아 사랑을 확인하고 간다. 이 사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찍을 수밖에 없어 다른 커플이 포즈 취한 것을 찍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