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대(天政臺)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낙화암 건너편 규암면 호암리에는 백마강을 따라 ‘범바위(호암)’라고 부르는 바위산이 있다. 호랑이 모양을 한 바위산에는 강변에 임금 바위를 중심으로 신하바위, 군사바위, 보초바위 등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는데 제일 높은 임금바위를 천정대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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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암에서 상류 건너편 백마강에서 본 천정대는 병풍처럼 이어진 바위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안내판 사진) |
‘삼국유사’에 기록된 정사암政事岩 고사에 의하면 천정대가 호암사라는 사찰 안에 있는데, 재상 후보 여러 명의 이름을 써서 함에 넣은 후 천정대 바위 위에 놓아두었다가 나중에 함을 열어 보고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자를 재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바위 이름을 정사암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일정한 의례 절차를 거침으로써 뽑힌 사람에게 신성함을 주고 여러 귀족들의 합의로 선출되었음을 보여 주어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적 참여 정치의 모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정대는 재상 선출 등 중요 국사가 논의된 신성한 장소라 할 수 있다. 호암사의 규모는 확실하지 않지만, 백제식 건물에 사용되었던 석재와 주춧돌, 그리고 작은 불상 등이 천정대 부근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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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만든 천정대라는 정자에 오르면 멀리 보이는 백제보를 제외하면 도도히 흐르는 백마강의 모습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백제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곧 진입로 정비가 마무리되면 낙화암 못지않은 탐방객이 몰려올 것이기에 이런 풍광을 홀로 감상하는 것은 다시 오지 않을 호사였다. |
천정대 유감
그런데 이처럼 고적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출중함에도 보존 상태가 열악해서 찾아가는 길은 험하기만 하다. 인근에 새로 조성된 백제문화 재현 단지가 있지만, 안내판은 물론 도로 사정이 형편없다.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에 보면“백제의 진정한 부활은 천정대 주변을 복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곳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잡아내야 백제의 잃었던 역사가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필자도 책을 읽고 신비로움에 네비게이션에 의지한 채 천정대 찾았지만, 천정대에 오르는 입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부여 방문할 때마다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올해는 1차 도전 실패 후 마을 입구에 주차하고 등산한다는 마음으로 걸어 올라서 겨우 진입로를 찾을 수 있었다. 콧대 높은 천정대를 7차례 도전 끝에 만난 것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백마강 유람선이 구드래나루에서 고란사(낙화암)까지만 가서 황포돛대로는 천정대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부여에서 권하는 수륙양용버스가 간다지만 감상의 맛이 나지 않는다. 역사적 가치를 떠나 백마강에서 올려다보는 천정대 절경을 감상하기에는 황포돛대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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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주차장을 포함한 천정대에 이르는 진입로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지만, 보상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지 안내판도 없이 호암마을을 지나야 나오는 진입로는 마무리 정비가 끝나지 않아 풀만 무성하였다. (2024. 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