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나루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고마나루는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 공원 아래쪽 금강변, 공주 시내를 관통하여 흘러 내려오는 제민천이 금강과 만나는 곳이다. 인간과 곰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고 역사 속의 고마나루는 곰나루라고도 불렸으며 한자어로는 웅진熊津이라고 하였다.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 경덕왕 때는 웅주라고 하였는데, 고려 태조 때 공주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백제의 슬픈 역사를 느끼고 싶다면 바로 이곳, 고마나루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비록 남아있는 유적은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백제일 수 있다는 역설을 증명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개 낀 아침이나 노을이 내리는 저녁에 찾아가면 아름다운 강 건너 연미산(제비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과 굽이도는 금강의 잔물결이 어우러지면서 포근한 백사장이 감싸며, 이내 마음속 평온이 찾아오는 듯하지만, 찾는 이 없는 고요함과 함께 쓰러져 가는 왕국의 스산함 속에 고통의 함성이 함께 들려오는 듯한 묘한 감정이 겹쳐, 소용돌이치는 곳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강 변 백사장이 있는 강 언덕과 수백여 그루의 소나무 숲, 굽이치는 금강, 연미산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역사성을 떠나 공주에서 꼭 봐야 할 곳으로 추천하고픈 곳이다.
고마나루는 백제 수도의 주요 통로였고 물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660년에는 나당연합군을 이끈 당나라 소정방(592~667)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자리 잡은 주둔지였고, 1010년에는 고려의 현종, 1624년에는 조선의 인조가 이 나루를 통해 공주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금강을 지키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 터가 남아있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제사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45년에는 큰 장마에 고마나루 일대의 모래가 쓸려나가자, 언젠가 지은 건물의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고마나루에 남아있는 백제의 숨결을 천년의 세월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강물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했던 시절 고마나루는 금강을 대표하였고, 사통팔달 연결된 교통망 덕분에 조선 때까지 상업의 중심지로서 명성이 높았다. 특히 1910년에는 공주와 군산을 강으로 잇는 정기 노선이 생겨 더욱 활기를 띠며 마지막 불꽃을 피웠지만, 근대 교통수단이 도입되면서 고마나루는 점차 기능을 잃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백제처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