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지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정림사지에는 오래된 탑과 이름 모를 석불좌상만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채로 방치되고 있었고 탑 남쪽 1층 탑신에 소정방이 새겨놓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이란 글씨로 인해 ‘평제탑(백제를 평정하고 세운 탑)’이란 오명을 갖고 일제 강점기까지 불리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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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정림사지 사진. 정림사 오층석탑과 멀리 석불좌상이 민가와 함께 보인다(정림사 박물관 자료). |
일제 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太平8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태평8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년)엔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고, 그 이후로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백제 당시의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기와에 기록된 내용을 보아 1028년에 정림사라는 이름으로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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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 |
정림사지의 발자취
정림사지는 옛 백제 고도인 부여 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던 백제시대 대표적인 절터인데,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왕궁, 관청 등이 건설될 때인 6세기에 사찰도 함께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이 8.3m의 석탑이 남아 있고 가람 배치가 중문과 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있어 백제 고유의 양식임도 밝혀졌다. 동서 회랑 및 건물지, 승방지 등 중심 사역의 규모는 동서 약 62m, 남북 약 120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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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 후 정림사지. 연지와 탑 주위로 중문지,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등이 둘러싸고 있다(정림사박물관 자료사진). |
1942~1943년 강당지와 금당지 일대에 대한 시굴조사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79~1984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고 최근 2008~2009년에 중문과 회랑 주변을 발굴하여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한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의 특징이 밝혀졌고, 현재 정림사지는 사적으로, 오층석탑은 국보로, 석불좌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또한 정림사지는 사찰이 건립되기 이전에는 공방 시설이 있었고 고려시대까지 사찰의 명맥을 이어 나간 것도 발굴조사 결과로 알 수 있었다.
정림사지 출토유물
이곳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는데, 창건기인 백제시대와 중건기인 고려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시대 유물로는 삼존불 입상과 소조불, 도용 등이 출토되었고 이들은 불상 조각사 연구와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고려시대 기왓장에서는 정림사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