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석조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바로 옆에 정림사지가 있고 뒤로는 금성산이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은 야트막한 단층 건물이지만 옆으로 넓게 벌려있어 방문객들의 방문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맞아주는 듯한 따뜻한 인상을 준다.
부여박물관 로비는 다목적홀이다. 위에 있는 천정은 유리로 되어있어 평상시에는 햇빛이 들어와 밝은 조명 역할을 하지만 교육, 홍보영상을 상영할 때는 창문을 닫아 스크린으로 바뀐다. 내가 방문했을 때마다 부여박물관 대표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전시실은 부여의 선사와 고대 문화실, 사비 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실, 백제의 불교 문화실, 기증으로 빛난 문화재사랑 실 등 4개 전시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최근에는 국보전시실 신축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여 석조 (보물)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면 백제 왕궁터에서 발견된 대형 석조가 넓은 홀 가운데를 차지하며 당당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흙으로 빚어서 다듬은 듯한 따뜻하고 부드러움으로 승화시킨, 분명 백제의 곡선이고 백제 사람들의 혼을 담은 아름다운 석조이다. 원래 석조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 내부를 파내어 절 등에서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던 석조물이다. 그런데 부여 석조로 알려진 이 석조는 연꽃무늬가 없고 원래 있던 장소가 백제 왕궁터로 알려져 있으며, 백제인의 미감을 살린 형태나 세부 표현 기법으로 보아 사찰 관계의 유물이 아닌 백제 왕궁에서 사용되었던 조형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석가모니 열반 이후의 세계에서 여래의 정법을 상징하는 ‘깨어진 불발(佛鉢)(부처 앞에 올리는 밥이나 쌀을 담는, 굽이 높은 그릇)’을 표현한 조형물이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1.57m, 지름 1.42m에 이르는 대형 석조이다. 석조는 하나의 돌에 아래 받침돌과 가운데 받침돌, 윗 받침돌로 나누어 만든 둥근 받침돌 위에 놓여 있다. 맨 위의 석조 입구 부분이 오므라들면서 안쪽 면과 바깥쪽 면도 모두 둥글고 바닥 면은 평평하면서도 모나지 않게 부드러워 보이는 것이 백제인들의 넉넉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보는 듯하다. 바깥쪽 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줄이 소박하게 돋을새김 되었는데 전체적인 몸체의 원만한 곡선과 어우러져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겉면을 자세히 보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있는 글자와 함께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